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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0. 2018

부고[訃告]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되는 순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직장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업무 말고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들의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입사를 하면 언젠간 퇴사하는 것처럼, 사람은 태어나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사직서를 날리거나 받게 된다.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부고'는 부모상(父母喪}이다. 바쁜 업무 중, 수많은 메일 속에서도 그것은 돋보인다. 검은 삼각형이 제목을 둘러싼 그 이메일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눈에 걸린다. 그럴 때면 나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계실 때 잘 해야지.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조모/ 조부상의 경우엔 상을 당한 사람이 오히려 부담을 갖는다. '호상'이라며 애써 분위기를 수습하고, 절대 장례식장엔 오지 말라며 손사래 친다. 심심한 위로를 하고, 소정의 마음을 전하고 나면 사람들은 또다시 업무에 전념한다.


입사 3년 차 때였던 것 같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고 제목을 단 이메일을 마주하고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옆 선배에게 물었다.


"과장님, '본인상'이 뭐예요?"


단어 자체로 보면 상식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근한 이름 석자와 그 옆의 '본인상'은 당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었던 선배. 때론, 그의 업무 스타일에 불만을 토로하며 후배들끼리 안주를 삼았던 사람이었다. 그를 좋은 선배라 칭할까, 나쁜 선배라 칭할까를 정하지도 못했는데 그는 이 세상에 사직서를 날렸다.


'본인상'을 당한 '망자'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저 앞만 보며 달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가족을 생각하게 하며, 삶의 가치와 목적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쉬지도 않고 뛰고 있는가.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왜 이리 서로 지지고 볶는가. 그러나, 멈춤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망자'는 잊히기 마련이며, 산자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업무는 끝이 나지 않으며, 닥친 일들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조금은 오래 하다 보니, '본인상'의 이메일을 간간히 받는다.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고, 동료도 있으며, 선배도 있다. 나이를 떠나 우린 모두 같은 직장인이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일을 했다. 때로는 먼 출장을 가 있거나, 다른 나라로 파견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그리움을 달랜다.


우린 모두 언젠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퇴사할 것이다.

우린 모두 언젠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도 퇴사를 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퇴사를 할 수 있을까?

나의 부고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멈춘 발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점점 더 시간이 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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