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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9. 2018

자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어렸을 땐 용돈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 불만은 곧 용돈의 액수와 관련된 것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은 항상 아쉬움을 남겼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건지, 세상의 물가가 비싼 거였는지, 정말로 용돈이 부족한 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는 것에 이유를 돌려도 좋겠다.


지금은 용돈을 마음껏 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더 크다.

해주고 싶은 것과, 치솟는 물가, 느리게 올라가는 월급의 무게가 서로 얽혀 한탄을 자아낸다. 한 달 살이가 빤하고, 자라 가는 아이들의 소비는 늘어가는 마당. 입장이 바뀌니, 어렸을 때의 그 '불만'이 왠지 더 철없어 보인다.


직장에선 경영실적에 따라 '허리끈을 졸라 매자'고 한다. 문제는 당최 허리끈을 풀러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위기만 있을 뿐, 호황은 없다. 힘들 땐 힘들어서, 잘 될 땐 안될 때를 대비해서. 예로부터 사방으로 침략을 받았고, 수출에 기대어 살다 보니 수많은 변수와 위험에 억눌린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신입사원일 땐, 그에 대한 불만이 컸다. 지금은 좀 다르다. 회사의 주가와 실적을 주시하고, 각 팀 하나하나의 성과가 그에 반영된다는 것을 체감한다. 용돈의 출처를 몰랐던 철부지가, 용돈이 어디서 얼마나 나오는지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 안간힘을 쓴다. 시선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은 열리고 기분은 좋아진다. 우리는 직장에서도 더 높이 올라가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 시야는 그리 녹록지가 않다. 여행에서 마천루를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만, 직장에서 높은 곳에 서면 사방의 '현실'이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용돈을 받을 때나,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할 때가 좋았단 생각이 들고 만다.


승진을 거듭하며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생각을 못하는 사람, 차분했던 성격이 불같이 변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며,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고 한다. 저 사람도 어쩔 수 없다는 야유이자, 그 자리에 서면 응당 그렇다는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야유'와 '이해'를 동시에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한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나 자신을 좀 돌아봐야겠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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