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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3. 2018

친구보다 먼, 타인보다는 가까운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참 좋다.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세대차이를 겹으로 느낄 정도로 그 속도가 여지없다. 세상살이의 엑기스를 모아 놓은 직장생활도 그렇다. 워라밸이란 말이 생겼고, 야근보다는 퇴근을 장려하는 문화가 생겼으며 (일은 줄지 않고, 아직도 과도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회식 문화도 변화를 맞이해, 저녁이면 비틀거리는 직장인의 비애 섞인 춤사위가 줄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나는 지인들에게 시대를 잘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나로선, 80~90년대 성장의 시대에 직장생활을 했다면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담배 태우는 군집은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의 정보교류를 했다. 간혹 그 와중에 대사(大事)가 결정되기도 한다.

회식 자리는 부족한 업무 역량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3~4차까지 이어지는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직장 생활을 연명하는 자가 많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그 당시의 '인맥'이란걸 쌓아 올리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요즘은 성장이 정체되고, 기업의 생존이 곧 사활이 되었다. 담배 피우러 가는 시간도 분 단위로 체크되고, 워라밸을 위해 퇴근 시간은 정해지고 회식 또한 많이 줄었다. 집중근무제가 운영되며 업무에 몰입하라는 압박이 밀려온다. 그러니, 역량은 없으면서 술자리에서 튀어 상사에게 잘 보이거나 동료와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통할리 없다.


"에이 형, 에이 누나 왜 그래? 좀 해줘~!"라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직장에는 괜스레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싫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호칭'도 갈린다. 편한 사람에겐 당연히 편한 '호칭'이 나온다. 그 옛날 인맥에 소질이 없다고 느낀 나는, 편한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심 불안했었다. 인맥이 중요한 직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단 업무에 집중하고 내 역량을 갈고닦는데 정성을 들인다. 직장 생활을 해보니, 아무리 '형', '동생'해도 결국 일을 못하면 서로에게 도움은커녕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본질로 돌아가, 직장은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곳이다.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고 저마다의 KPI가 있다.

그렇다고 편한 '호칭'이, 새벽 3~4시까지 같이 있었던 추억이 그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모자란 역량을 커버해주지도 못한다. 이젠.


'호칭'이나 '인맥'에 더 이상 올인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역량을 끌어올리면 어느샌가 주위엔 '호칭'에 연연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난, 그것을 실제로 느낀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호칭'에 연연하지 않아도 역량 있고 좋은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알아본다.


'친구보다 먼, 타인보다는 가까운'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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