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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3. 2018

그 바다의 목소리 슬로베니아 '피란'

와줘서 고맙다는 목소리에 불러줘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 여정 -


[Intro] 여행은 고단함이다.

암스테르담 To 독일 뒤셀도르프 (228km)

독일 뒤셀도르프 To 오스트리아 비엔나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오스트리아 비엔나 To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373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To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130km, 1박)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42km)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2박)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자다르 (159km, 1박)

크로아티아 자다르 To 슬로베니아 피란 (381km, 1박)

슬로베니아 피란 To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75km)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To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105km)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To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400km, 1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To 독일 뒤셀도르프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독일 뒤셀도르프 To 암스테르담 (228km)



북서쪽으로 4시간


자다르의 석양을 뒤로하고 차는 북서쪽을 향했다.

그곳의 석양에 흠뻑 취한 우리 가족은 다음날 아침 짐을 주섬주섬 챙겨 '피란'으로 출발한 것이다. 4시간을 조금 넘게 달리면 슬로베니아의 국경에 다다르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피란이 있다. 흐바르 섬까지 다녀오며 이미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은 터라, 왠지 조금은 익숙한 곳으로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에 들러 배를 채운다. 아이들은 틈을 내어 최선을 다해 논다.
피란 입구.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는 무료로 운행된다.


피란 입구에 도착하면 차를 별도로 주차해야 한다.

관광객 차는 피란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딱 새침한 그 정도였다. 짐을 챙겨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야 하는 우리 가족은 비가 올까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빗줄기가 버스를 타자마자 차창을 스쳤다.

피란의 첫인상. 광장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작지만 피란에선 가장 큰 광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광장은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여느 다른 어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특유의 분위기는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구름은 잔뜩 뭉쳐 있었고, 옅은 빗줄기는 흩날리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강풍이 몰아쳤다.


두리번거리기를 몇 번.

우리는 숙소를 찾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옛날 건물 몇 층에 짐을 풀고 숨을 돌리려 창 밖을 봤다. 거짓말 같이 강풍이 불고 있었다. 새침했던 날씨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사나운 바람과 굵어진 빗줄기.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피란 바다의 성격 변화에 당황한 듯했다. 물놀이를 즐기던 연인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숙소로 대피했고,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첫인상이 사나운 날씨라니. 보기보다 살갑지 않은 피란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무거움과 동시에 숙소 안에서 그 사나움을 피한 안도감이 몰려왔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광장은 한가했다.


얼마 되지 않아 빗줄기는 잦아들었다.

바람은 여전했고, 파도는 높았다. 이것이 피란이라면, 그것을 몸소 느끼고 싶었다. 더웠던 여행길에 맞이한 시원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니, 역시나 광장의 열기는 식어있었다. 수 많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처소로 몸을 옮겼고, 사납게 내리친 빗줄기가 온 바닥을 깨끗하게 쓸어내린 뒤였다.

피란의 골목은 아기자기하다.


피란의 골목은 아기자기했다.

그리고 난 그런 골목을 좋아한다. 한국으로 치면 어스름한 저녁에 보글거리는 찌게 냄새가 나는 그런 정겨운 공간. 아마도 피란의 골목도 뱃일을 나갔던 사람들을 그들만의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맞이했을 것이다. 여느 어촌을 가도 아기자기한 골목과 형형색색의 색을 가진 집이 있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석양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물들이고
피란의 석양은 그렇게 아름답다


골목을 벗어난 우리 가족은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시간은 지나고 주변은 어둑해져 태양은 오늘 하루를 마감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 이름이 '석양'으로 바뀌는 순간. 자다르의 석양을 기억하고 있던 우리는, 또 다른 피란의 그것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란의 석양은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석양은 그 주위의 모든 것을 물들인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한다. 피란에서 보든, 한국에서 보든,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 보든 석양이 아름다운 이유다. 물론, 그것이 바다와 함께여서 더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석양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어둠이 찾아오면, 바닷가 식당들은 빛을 낸다.


석양이 지고 나면, 식당에서 즐겁게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닷가를 따라 즐비한 식당은 저마다의 색을 내며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즐비한 식당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관광객에게 익숙한 식당 직원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오징어 튀김은 바닷가 근처 식당에선 필수 메뉴다. 아이들을 위한 샐러드와 수프. 그리고 고기 한 두 종류를 시키면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식사를 즐긴다. 사람들은 저마다 들떠서 식사를 하고,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열기와 기분 좋은 분위기로 주변을 아우른다. 기분 좋게 웅성이는 그 소리는 시끄럽지가 않다. 듣기 좋은 배경음악과 같이 주위를 맴돈다. 아마도 기분 탓이리라. 여행과 바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 그럴 만도.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호텔 근처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식사를 하며 구경하는 사람, 길가다 잠시 들러 그것을 듣는 사람. 우리와 같이 서성이다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리듬을 타는 노부부도 있었다. 무대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뮤지션들은 각자의 악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최선들은 한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행복하게 하면서.

한 여름밤의 작은 콘서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선율이 좋았다.


그 바다의 목소리

청명한 아침


기분 좋게 잠을 청한 다음 날.

피란은 어제의 사나웠던 날씨를 사과라도 하듯 환한 햇살을 꺼내 놓았다. 공기는 상쾌했고, 햇살은 적당했다. 바람마저 기분 좋은 미풍으로 누군가 일부러 조절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날시, 더욱더 선명한 바다


바다는 더 선명했다. 사나웠던 바다는 잠잠하고 고요하게 변했다. 언덕과 집, 배와 사람 그리고 돛대와 등대와도 조화로웠다. 피란의 그 아침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화가라면 캔버스에 그것을 옮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가 아닌 난, 그것을 마음에 그려 넣기에 여념 없었다.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꺼내볼 요량으로.


다시 찾은 광장과 골목, 그리고 언덕은 새롭게 우리를 맞이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교회에서 바라본 피란의 정수리는 정겨운 붉은색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탁 트인 바다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나도 불러줘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와이프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달콤했다. '행복'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그리곤 그것을 마음으로 품었다. 그것이 날아가기 전에, 휘발되기 전에, 머리로 잊기 전에.




붉은 작은 등대와 사진을 함께 찍고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마치 어제 도착한 우리의 모습을 리와인드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날씨가 이것이 단지 시간의 반대가 아니란 걸 말해주고 있었다. 마음속에 생겨나 간직된 가족들과의 추억 또한 시간의 흐름을 똑똑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며 아이들은 아쉬운 듯, 언제나처럼 어느 여행지를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Goodbye, Piran!

피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피란의 정수리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 찍은 붉고 작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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