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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3. 2018

구두

구두를 신는데 용기가 필요하단 걸, 어렸을 땐 몰랐다.

어렸을 적.

귀를 쫑긋하면, 아버지가 퇴근하시는 것을 나는 곧잘 알아채곤 했었다. 또각또각 소리는 골목 어느 어귀에서부터 들려왔는데, 좁은 골목의 두 벽면은 그 소리를 좀 더 선명하게 했다. 그 구두 소리가 반가웠던 건, 아버지 손에 들려있을 무언가에 대한 기대였다. 가족들을 위해 항상 무언가를 사들고 오셨기 때문이다. 과자부터 치킨, 또는 과일. 월급의 어느 일부와 교환된 그것들은 달고 맛있었고 상큼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멈췄다. 그즈음,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구두는 그렇게, 나에게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다.

'어른'의 이미지로도 각인되어 있다. 실제로, 내가 구두를 신어야 했던 때는 누군가에게 정중함을 보여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때와 일치한다. 그렇게 구두를 신고, 일자리를 얻어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구두는 여지없이 또각또각 소리를 낸다. 손에는 내 월급의 어느 일부와 교환된 과자나 치킨, 또는 과일이 들려있다. 아이들은 그것을 달고 맛있게, 그리고 상큼하게 먹는다.


구두를 신고 지나온 직장생활을 보며, 어렸을 적 아버지가 짊어졌던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아버지의 구두 소리를 들었을 때 손에 들려진 것에 집착하지 말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사들고 온 것들에 신나서 좋아라 하는 아이들에겐 하나도 섭섭하지가 않다. 아이들이 그 무거운 짐을 미리 짐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언젠가 구두를 신을 나이가 되어 지금의 나와 같이 잠시 잠깐 깨달음을 갖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오늘도 수많은 직장인은 구두를 신는다.

뒷굽의 또각또각 갈채를 뒤로하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한다. 발은 불편하지만, 그 대가로 받아오는 월급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다.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힘을 내어 다시 구두를 신는다. 


구두를 신는데 용기가 필요하단 걸, 어렸을 땐 몰랐다. 


요즘은 편한 구두도 많다.

구두처럼 생겼지만, 발바닥과 지면을 푹신하게 감싸주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게다가, 캐주얼 데이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편한 운동화를 신고 회사로 향한다. 구두 특유의 또각또각 소리가 날 일이 없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의 구두를 신는다.

용기를 내어 출근하고, 용기를 내어 일하며, 용기를 내어 퇴근한다. 직장인으로 사는 이상, 난 구두를 계속 신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것은 숙명이자, '어른'임을 상기하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가장으로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성장과 성공을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편한 운동화를 신어도, 내 귀에는 그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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