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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4. 2018

나를 사랑하는 법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법의 시작

대학교 시절.

야간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곳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직장인 수강생들이 많았다. 같은 공부를 하지만 이미 세상의 이치를 조금은 더 일찍 경험한 그분들에게서, 나는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지 그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존경스러웠다. 마침, 고학년이었던 터라 결국 직장인이라는 진로를 선택해야 했던 당시 상황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계절이 한 두 바퀴 돌고 나면, 나도 그들과 같은 멋진 존재가 되어 있으리란 기대도 컸다.


"야, 직장인 별거 아냐. 뭐든 다 잘 알 것 같다고 했지? 오히려 더 바보가 돼! 시야는 좁아지고, 일 밖에 모르고. 말이 사회생활이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몰라!"


나이가 지긋하신, 나와 학번이 같았던 한 대기업 차장은 그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미 취업을 하고,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어른'의 '배부른 불평'이라 생각했다.


결국 난 직장인이 되었고, 십 수년째 바보로 살고 있다.

'일' 바보, '월급' 바보, '보고서' 바보, '회의' 바보, '정치' 바보, '인정' 바보 등.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먹고살기 위해, 그 밥줄을 부여잡기 위해 또 하루 '바보'로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를 통해 멍청해지진 않고 오히려 성장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바보'라는 의미가 중의적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바보' 짓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는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가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지만,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 '멍청한 바보'의 진정한 .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존재는 병들어 죽는다.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영혼의 병이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달게 받으며.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할까.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할까.

승진하지 못하면 어떡할까.

보고를 잘못해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깨지면 어쩌나.

하는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직장은 이런 고민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는 곳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기보단,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대한 그것이 더 크다. 당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사자에 쫓기는 사슴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반추보다는, 도망가는 것에 열중해야 한다. 살고 봐야 하니까. 그래야 '나'도 있는 거니까.


이러한 관점에서 결국, '생존'은 '나를 사랑하는 법'의 기초이자 출발선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도출된다.

즉, 오늘 하루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다면,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법'을 실천한 것이 된다.


'생존'을 위해 하는 모든 몸부림은 초라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귀하다. 그러니, 생존(월급, 승진, 인정)에 목매는 직장인의 팔자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품격은 누구에게 보여주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에게 먼저 차려야 할,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향한 소중한 매너다.


그러니, 나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지금 내가 직장인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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