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29. 2018

드라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나의 꿈은 드라마 속 '실장님'이었다.

그 이미지는 확고하다. 멀쑥한 정장에 가지런한 머리 모양. 초고속 승진으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리더십으로 거느리고, 직장에선 승승장구한다. (대부분은 회사 오너의 아들이기도 하고.) 그리고 언제나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실장님'의 차지였다. 명석한 두뇌로 이성적이지만, 사랑에는 자신의 신념도 내버릴 줄 아는 사람. 그 신념의 꼿꼿함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의 크기로 환원된다. 요즘은 '실장님' 뿐만 아니라, '본부장님', '대표님'으로도 그 직급과 직책이 다양하다.


내가 바란 것은 그들의 '승승장구'함이었다.

어렸을 때야 대통령부터 의사, 과학자를 꿈꿨지만 취업을 앞둔 현실 세계의 대학생에겐 드라마의 '실장님'이 눈 앞의 목표였다. 최연소 임원,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 회사 대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떳떳함. 드라마 속 '실장님'을 떠올리며 난 그렇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자 다짐했었다. 하지만,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라는 소스라치는 상대를 만나게 된다. 최연소, 최단기로 퇴사하지 않으면 다행. 회사 대표는 고사하고, 바로 위 사수에게도 벌벌 기어야 하는 도제 시스템은 가뜩이나 초라한 존재를 더 안쓰럽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드라마에서 본 '실장님'은 현실에 없었다.

'실장'이라는 타이틀에 올랐을 때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한가로이 연애를 할 때가 아니다. 이미 장성한 자식이 있고, 직장 생활은 십 수년 이상을 해야 그 타이틀을 거머쥘까 말까다. '승승장구'란 말도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승승장구'했던 때가 있을까 싶고 아마도 있었더라도 그건 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는 더 그렇다. 괜히 봤다가 빠져들까 봐도 무섭고, 결국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할 요량으로 설정한 배경은 너무나도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많은 예비 직장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큰 착각에 빠질까 걱정된다. 그 큰 착각에 빠졌던 나를 되돌아보니 그렇다. 


갑자기 유명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드라마 속 '실장님'을 보고 따라 하려 했던 내가 잘못이다. 생각해 보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라하려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P.S


갑자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직장에서의 나날들이 떠오른다.

'회사 오너의 아들'이 아닐 뿐. 난 이미 드라마 속에 있는건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사랑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