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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10. 2018

월급쟁이

'쟁이'라는 자기 연민과 '장이'라는 자부심의 무한반복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른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지향'과 '지양'이 그렇다. 한 글자 차이로 그것의 의미는 정 반대가 된다. 추구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단 한 글자로 정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삶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사람들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대부분은 '향'과 '양'에 음조를 두어 이야기한다. 상대방에게 나는 이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줌과 동시에, 스스로 그것을 구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장이'와 '쟁이'란 말이 있다.

'장이'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 '그것과 관련된 수공업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즉, 전문가란 뜻으로 거듭난다. '옹기'라는 말에 이것이 붙어 '옹기장이'가 되면 '옹기그릇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된다.

반면, '쟁이'는 '장이'와 같이 일부 명사나 어근에 붙는 건 같지만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든다.


유쾌하진 않지만, '쟁이'가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월급'이다.

그리하여 '월급쟁이'. 바로 직장인인 나다. '쟁이'란 말이 붙음으로써, 월급을 받는 존재의 설움은 증폭된다. 나 스스로도 한 때, '내가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월급쟁이가 되었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사실, 지금도 가끔은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자주 한다. 위로부터의 호통과, 아래로부터의 압박.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빠른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 더 그렇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왜 월급을 주는 존재가 되지 못했는가. 왜 전문직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지 못했는가. '월급'을 받는 '쟁이'란 시선으로, '얕잡는 뜻'을 더하여 스스로를 측은하게 바라본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래서 남는 게 뭘까를 생각했다. 자괴감 밖에 없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데는 한계가 없다.


생각을 좀 바꾸기로 했다.

스스로를 얕잡아 이르면, 나는 '쟁이'처럼 일 할 것이다. 그러면 성장은 없다. 자괴감이나 자기 연민, 고만고만한 월급만 남을 뿐.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되새겨 보기로 했다. 힘겹게 출근해서 보고서 만들고, 이메일 쓰고, 보고하고 회의하다 퇴근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모두 모으면 '어느 한 분야의 직무'로 완성된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으면 한 명은 그저 벽돌이나 쌓는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집을 짓고 있다고 한다. 누가 '쟁이'이고 누가 '장이'일까.


'쟁이'라는 자기 연민과 '장이'라는 자부심은 직장생활을 하는 한 무한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직장인의 숙명이다.


몇 년 전부터 회사 직급 체계가 바뀌었다.

사원부터 부장까지 이르던 체계를 3단계로 간소화하였는데, 영어로 하면 'Assistant' - 'Specialist' - 'Professional'이다. 나는 지금 'Professional'로 불린다. 직급 체계가 바뀐 게 우연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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