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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18. 2018

바탕화면

모든 사람들의 바탕화면이 같을 거란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렇게 해 놓고 쓰면 불편하지 않아?"


지나가던 한 사람이 다른 동료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고 물었다.

바탕화면 아래에 있어야 할 메뉴바가 화면 우측에 세로로 세워져 있던 것이다.


'정말, 불편하진 않을까?'


이 궁금증을 들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바탕화면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메뉴바는 위에 있기도 했고, 왼쪽에 있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메뉴바를 아예 감추어 놓고 필요할 때만 마우스 커서로 그것을 불러냈다.


나는 무슨 근거로 웬만하면 메뉴바를 다들 같은 자리에 놓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을까.


메뉴바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바탕화면이 폴더와 파일로 가득 차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바탕화면에 폴더는 지극히 제한하고, 일부 바로가기 메뉴와 휴지통만 배치해 놓고 있었다.


비슷한 색상의 와이셔츠를 입고, 똑같은 크기의 파티션에 앉은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개성은 무시한 채, 회사는 사람을 너무 획일적으로 다루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나는 이미 획일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어느 부서 누구누구. 직책. 직급. 맡은 R&R.


물론, 회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만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서글펐다.


나는 서슬 퍼런 엑셀 파일 앞에 앉아 골머리를 쓰고 있는 서 과장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가 젊었을 때 꾸었던 꿈과, 바랐던 이상. 도덕적 회의와 행복을 위한 소망. 지금은 앞에 펼쳐진 엑셀 함수와 씨름을 하느라 스스로도 잊었을 그것들에 대해 나는 서 과장 대신 의문을 품었다. 그 옆의 유 부장, 그 앞의 김 과장 그리고 저 멀리 임원실에 있는 상사의 것도 함께.


다들 고만고만한 월급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가지만, 한 때는 젊음을 불태웠을 존재들.

문득, 내 옆에 앉은 동료가 궁금해졌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꿈을 꾸어왔는를 말이다.


알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곤, 모든 사람들의 바탕화면이 같을 거란 생각을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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