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란 정서와 위로는 속인주의에 기반한다.
출장길.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는 국물이 그립다. 그것은 내 몸은 물론, 혀와 정서에 인이 박여 그리워하다 못해 그것을 갈구하게 만든다. 혹자는 입이 촌스러운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해외 출장길에 올랐으면 그 나라 음식에 흠뻑 젖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맞는 말이다. 해외에서 맛보는 다양한 국가와 도시의 식도락은 힘겨운 출장길의 작은 즐거움이니까.
유명하고도 맛있는 현지 음식은 내 입에 즐거움을 주고, 낯선 그 식감은 내가 새로운 곳에 와있다는 이방인의 여유를 만끽하게 한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가지가지의 사정에 의해 이리저리 발달되어 왔을 그 음식들에서, 난 저마다의 사연을 짐작한다.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의 음식은 대개 맛이 없다. 요리도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식민지 개척을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간편한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국토의 6분의 1을 개간한 지독하고도 대단한 어느 나라는, 언제 홍수가 날지 몰라 진수성찬을 차리지 못해 감자가 가장 유명한 요리가 되었다.
어차피 고기, 탄수화물, 채소를 섭취해야 하는 사람인지라, 재료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의 요리법이 국경을 가르고 언어를 나누며 문화를 다양하게 한다. 그것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간혹, 현지에서 맛보는 그 나라의 국물요리는 그나마 반갑다. 좀 더 칼칼하고, 맵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뼈를 몇 시간이고 푹 고은 깊은 국물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이상하게 현지식을 먹으면 배는 부르지만, 든든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두 끼에서 세 끼를 연달아 먹으면 아랫배서부터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다. 당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 유명한 식당에서라도 그렇다. 그러다 한식을 마주하면 단박에 그것들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든든하다. 마지막에 국물을 들이켜면, 게걸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시선에 아랑곳 않는 위로를 얻는다.
우리나라 음식은 그리 여유가 있지 않다.
국밥, 비빔밥, 김밥 문화는 우리네가 얼마나 빨리빨리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한 방에 많은 것을 해결하려는 이 음식들은 그것 그대로 역사이자 우리들의 이야기다. 뜨거운 국물을 그리 빨리 먹는 민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따뜻한 '위로'가 그리 빨리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위로'를 구하는 내 맘도 여유가 있지 않고 급하다.
어찌 되었건 난 출장길에서도 한식을 갈구한다.
특히, 국물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다. 뜨끈하고도 칼칼한 국물은 지친 출장길에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 중 한 끼는 국물을 먹어야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음식이란 정서와 위로는 속인주의에 기반하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