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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1. 2018

멀리 보는 연습

나만 멀리 보기 연습이 필요한 건 아니었구나!

눈이 침침하다.

노안이 온 것일까. 가까운 것을 볼 때, 안경을 위로 들춰내고 미간을 찡그리며 보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결심하곤 했는데. 어차피, 결심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절대 그러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글자를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하거나 들고 있는 어떤 것을 눈 앞에 스스로 들이미는 자신을 발견할까 나는 계속해서 두렵다.


눈이 침침한 참에,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을 바라보나 돌아보기로 했다.

역시나 작은 액정이었다. 그 작은 화면 안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알람이 울려 몇 시인 것을 확인하고, 어떤 알림이나 메시지가 와있진 않은지를 그 작은 화면 안에서 서성인다. 출근하는 내내, 나는 그 화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출근을 하면, 그보다는 조금 더 큰 화면에 집중한다. 노트북 모니터와, 그 옆에 연결된 더 큰 모니터를 번갈아 오갈 뿐. 결국, 나는 크기가 다른 화면 세 개에서 허우적 댄다.


잠시 눈을 들어 사무실 창 밖을 바라본다.

유리창 너머로 저 멀리 보이는 하늘과 산, 강물과 높이 솟은 빌딩들의 모습이 낯설다. 그것마저, 하나의 더 큰 화면과 같다. 이쯤 되면 허상과 실제가 머릿속에서 치고받고 있는다고 봐야 한다. '일장춘몽', '호접지몽'. 소스라치게 날카로운 현실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잠시 잠깐 '허상'에 기대려 하다간, 결국 현실로 회귀한다.


생활이 그렇다 보니, 어쩌면 난 근시안(近視眼)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시야가 단지 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거다. 생각과 마음의 눈. 즉,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좁아지는 느낌이다. '일희일비'하고, 진득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사가 조급하다. 어느 작은 변화와 변수에 화들짝 하기 일쑤고, 작은 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노심초사한다.


가까운 것만 들여다보면서 난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닐까.

멀리 보지 못하면 방향성을 잃는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정작 내 삶을 위한 고민은 아닌 것이 많다. 다시,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난 연습을 해야 한다. 멀리 보는 연습. 하루에 고개를 들어 저 멀리를 바라보고, 하늘을 보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차를 타도 작은 화면에서 벗어나 지나치는 차창 밖의 피사체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다.


아, 어쩌다 나는 멀리 보는 것을 연습이라도 해야 하게 된 것일까.

각박한 시대. '멀리 보기 학원'이라도 차리면 떼돈을 벌 수도 있지 않을까.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잠시 무언가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나니 침침함이 조금은 가셨다. 삶에 조금은 여유가 깃든 것 같았다.


퇴근길.

자주 이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다, 전철 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작은 화면에 고개를 불쑥 들이민 것을 봤다. 나만 멀리 보기 연습이 필요한 건 아니었구나.


뭔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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