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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1. 2018

RSVP

회신하는 사람들의 군상은 다양하다.

일을 하다 보면 회의를 기획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나, 해외에서 회의가 열린다면 머리는 복잡해지고 손은 더 바쁘다. 지역과 시간이 정해지면, 회의 Agenda에 따라 참석 범위를 정한다. 고위 임원부터, 각각의 실무자까지. 하나의 회의가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선 처음 그것을 잘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참석자 파악이다.

참석자에 다라 회의 성격과 분위기, 진행 방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RSVP' 리스트를 만들어 각 참석자에게 보낸다. 'RSVP"는 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의 줄임말이다. 영어로는 'Reply Please'. 18세기 영국의 상류사회에서 프랑스식 에티켓을 써서 편지에 쓰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후에 미국의 시인 에밀리 포스트가 그것을 줄여 'RSVP'로 줄여 사용한 것이 널리 퍼졌다. 정작 프랑스에선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RSVP'를 보내 답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각의 참석 일정, 회의 장소로 들어오고 나가는 비행 편,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참석 여부 등. 기본이지만 중요한 정보는 각자의 바쁜 일정과 업무에 파묻힌다. 내게는 중요하고 급한 업무가, 다른 이에겐 하찮고 귀찮은 정보 기입인 것이다.


회신하는 사람들의 군상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곧바로 모든 정보를 기입해 회신한다. 물론, 극히 드물다. 다른 이는 우선 들어오고 나가는 일정이라도 보내준다. 그나마 고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이 없다. 해서 'RSVP' 메일은 한 번에 끝나질 않는다. 회의 일정이 다가올수록, '공지'는 늘어만 간다. 'Last Call'을 외쳐야 그나마 회신은 꾸역꾸역 온다. 그마저도 오지 않으면, 나는 직접 전화를 걸어 그것을 받아 다.


'RSVP'에 응답하지 않았던 몇몇이 '택시'나 '호텔' 문의를 해온다.

자신의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궁금한 것만 골라 연락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혹시, 나는 누구에게 이러고 있진 않은지 새삼 조심스럽다. 그저 내 할 일이기에, 친절하진 않지만 그나마 정중하게 안내를 한다. 직장에선 이렇게 인내심을 배우고, 덕을 쌓는다.


회의가 시작되면 슛이 들어가고 카메라는 돌아간다.

그것은 마치 생방송과 같다. 정해진 시간표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시간이 지체되면 그것을 바로 잡느라 난리다. 몇 번의 NG는 발생하기 마련. 더 큰 방송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금 메가폰을 움켜쥔다. 점심을 지나, 저녁 식사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회의에서 오간 공식적인 말투를 내려놓고 조금은 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다. 'RSVP'에 정성을 담아 회신한 사람, 끝까지 회신하지 않은 사람 모두 왁자지껄 시간을 보낸다.


나는, 그 두 부류의 사람을 골라보지 않기로 다짐하고는 나중에 누군가 보낼지 모르는 'RSVP'에 빨리 답하겠노라고 생각하며 앞사람의 빈 잔에 술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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