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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3. 2018

모든 후회는 배움이었음을

아마도 나는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후회'를 하겠지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후회가 없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선택을 잘했거나, 선택한 것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는 것. 하지만 나라는 연약한 존재는 그 두 가지 경우와 별로 상관이 없다. 어느 한 선택에 대해 잘했다는 확신을 가지기엔, 삶이 너무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선택한 것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 A를 택하면, B는 어땠을까를 고민한다. 하물며 자장이냐 짬뽕이냐를 두고도 나는 고뇌한다. 자장을 고르면 짬뽕을 떠올리고, 짬뽕을 선택하면 자장을 생각한다. 짬짜면이 언뜻 해결책인 것 같지만, 섞인 맛이 그리 개운치 않다. 차라리 어느 하나를 골라 한 그릇을 다 먹을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의 단골 후회감은 '어제'다.

어제 내가 한 것들에 대한, 또는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는 차고 넘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저렇게 행동했으면 안 되었던 것들. 괜한 이메일을 보낸 것 같다는 생각과 누군가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아쉬움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체중 조절을 위해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탄수화물을 줄였어야 하는데, 영어 단어 하나라도 외웠어야 하는데. '후회'는 나를 걱정하고 고뇌하게 한다. 더불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나무라는 과정도 거친다. 그럴 때면 나는 나 스스로와 대립한다.


때론 스스로를 나무라는 자신에게 화가 나 감정이 요동한다.

재밌는 건, '감정'은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홧김에 뛰쳐나가 운동을 하거나, 답답한 자신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무언가를 자꾸 시작하기도 한다. 감정의 여운은 길지 않아서, 그러한 움직임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끔 효과 아닌 효과를 보는 이유는, 그러한 감정의 요동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후회' 하니까.


'후회'하는 순간엔 원하지 않는 '배움'을 얻는다.

그렇게 했어야지, 또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마음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그 미련은 마음 한 편의 어두운 곳에 각인된다. 검게 그을린 조약돌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새긴 글자처럼, 그것은 더 선명하다. 그리고는 '후회'가 '배움'이 되어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또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애초에 나는 '선택'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선택 이후에 다가오는 결과들을 100%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그러니 나는 그냥 그것을 '배움'으로 퉁치고 버텨야 한다. 공부처럼, 이해가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냥 외우는 걸로.


새빨간 국물에 가지런히 말려있는 면 위, 새우와 오징어 몇 조각 그리고 채소가 어우러진 짬뽕을 시켜 먹을 때 자장면을 시킬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면, 그 순간 다음번엔 자장면을 시켜야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생각하려 한다.


아마도 나는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후회'를 하겠지. '배움'을 얻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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