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정통으로 얻어 맞은 나와 텔레비전은 서로를 멀뚱하게 바라본다.
금요일 늦은 밤.
고단한 한 주간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마침내 맞이한 소중한 시간. 퇴근 땐 소위 말하는 불금을 어떻게 보낼까 설레는 마음을 가지곤 하지만, 이미 방전된 가련하고 비루한 직장인의 몸뚱이는 그저 집을 찾는다. 어쩌면 그건 나이라는 세월이 개입해서일 것이다. 무턱대고 나가서 모든 것을 즐기기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쌓아온 세월과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난 싫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려 한다.
어쩌면 혼자이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 어떤 생각, 손가락 하나 조차 까딱하고 싶지 않다. 주말을 맞이하기 전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잔뜩 생각해 놓지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쉬고 싶고, 고독하고 싶다. 그래도 왠지 이 금요일 밤을 그대로 보내기엔 큰 미련이 남아 나는 멀뚱하고, 금요일의 늦은 밤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움직이기 싫고, 아무 생각 없을 때.
그렇게 난 잘 찾지 않던 텔레비전 리모컨을 주섬주섬 찾는다. 큰 화면에 얇아지고 세련된 디자인의 텔레비전은, 겉모양은 화려하지만 어쩐지 그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고 초라하다. 비디오(TV)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소셜 콘텐츠가 텔레비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불을 끈 컴컴한 새벽 거실에서. 세월을 정통으로 얻어 맞은 나와 텔레비전은 그렇게 서로를 멀뚱하게 바라본다.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텔레비전의 채널은 무수하다.
어렸을 땐, 채널 3~4개만 돌리면 되었었는데. 지금은 몇 백개를 눌러야 한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움직이기 싫고,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존재에게 그것은 무기력한 즐거움이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를 열심히 알려주는 각각의 프로그램들은 사뭇 산만하다.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와,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때론, 그 사람들에게 고맙다.
나 대신 여행하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요리하고, 맛보고, 많은 것들을 체험하니까. 일반인이자 직장인이라는 신분에 묶인 나를 대신해 그들은 그토록 산만한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나의 행복을 찾으면 안 되겠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라도 하는 것을 보며 위로를 얻는 건, 힘을 빼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존재에겐 위로다.
어렸을 땐,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다고 혼났었는데.
이제는 알아서 텔레비전과 멀어진 내 삶이, 의도치 않게 진지해진 것 같아 가끔은 화들짝 놀란다. 늦은 밤의 힘 빼기가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 밤도 그렇게, 어쩌면 누구보다 외로울지 모르는 텔레비전과 잠시라도 함께해야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같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