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09. 2018

부속품

'역할'이 '부속품'의 속성을 가진 것이지 우리 자체가 부속품은 아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회사를 다니던 후배가 돌연 퇴사했다.

회사에서 '부속품'처럼 일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면서. 많이 이해가 되었다. '직장인'과 '부속품'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들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이 바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 조직 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잣대로 삼는다. 'HR(Human Resource)'란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직장인은 회사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자원'인 것이다. '자원'이 제 기능을 잘하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부속품'으로 정의하는걸 난 저항한다.

'부속품'은 사물이다. 사물은 '생명'이 없다. '생명'이 있는 대상을 '사물화'할 때 그 본질은 오염된다. '부속품'이란 단어에 동조하는 순간, 숨 쉬는 나의 '생명'은 부질 없어진다. 그러면 '생명'이 가진 고유의 속성, 즉 '열정'과 '희망'도 바스러진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역할'이 '부속품'의 속성을 가진 것이지 우리 자체가 부속품은 아닌 것이다.

오염된 가치는, 우리 자신이 '부속품'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는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에 몸서리치고, 주체할 수 없어 만성화된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영혼을 잃은 '좀비'와 같이. 그저 출근하고, 그저 일하고, 그저 퇴근하면서 그렇게 '부속품'이 되어 가는 것이다.


회사가 나를 '부속품'처럼 생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실상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이 일은 그 조직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담당자잖아요. 그럼 회신을 하셔야죠!"


상대방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업무에 기반한 주장을 펼칠 때가 있다.

물론, 직장에선 그래야 한다. '감정'을 일일이 따지다간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는 많다. 사전에, 사후에 해당 담당자와 차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한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그간의 섭섭함을 풀 수도 있다.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축하의 한 마디를 전할 수 있고, 그 날 입고 온 옷을 보며 멋지고 예쁘다고 칭찬 한 마디를 쓱 건네도 좋다.


'부속품'은 다른 '부속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제 할 일만 하다가, 다른 '부속품'이 멈춰 버리면 모두가 멈춰버리게 된다. 나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나의 역할은 '부속품'과 같이 정확하게 제 것을 잘하려 노력하는 것이지만, 스스로가 '부속품'이라는 오염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를 볼 때도, 그 '역할'과 '사람' 그리고 '감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배려'라는 좋은 단어가 있지 않은가.

'배려'는 숨 쉬는 존재가 가진 아름다운 역할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텔레비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