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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9. 2018

뒤끝

아마도 사람이니까.

"이번에 새로 오신 사장님, 뒤끝 장난 아니래. 한 번 찍히면 끝이라던데?"


아무래도 고위 임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뒤끝'아닌가 싶다.

새로 오시는 고위 경영진이나 상사들을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귀를 쫑긋해보면, '뒤끝'이 없다는 분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직장 생활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감히 그분께 반대되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거나, 그 앞에서 실수라도 해 눈 밖에 나진 않을까. 직장인이라면 모두 그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역시, 직장생활의 묘미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일까. 매 순간을 긴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때론, 그것이 회사를 굴러가게 한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정말 그래야 하지만) 그 고위 임원분의 생각이 옳고, 전략 방향이나 의사결정이 제대로라면 그분의 '뒤끝'은 회사를 위해선 바람직한 덕목이다. 그 '뒤끝'이 무서워 지시한 바를 사람들이 잘 따르고 성과가 난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분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데 있다. 그리고, '뒤끝'이 무서워 움직이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는 성과는 말라비틀어진 무언가를 짜내어 억지로 만든 무엇이다.


그러다 문득, 남의 '뒤끝'만 운운하다가 나는 내 것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내 '뒤끝'도 상당하다. 아직까지 나의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아마 나도 위로 가면 갈수록 그분들과 똑같아지지 않을까 싶다. 인사를 설렁하는 사람, 무슨 일을 부탁했을 때 맘 불편하게 얼굴을 찡그리는 후배, 나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 후배 등. 내가 만약 팀을 꾸리거나, 큰 조직을 담당해야 했을 때 저 친구들은 제외하고 나와 케미가 잘 맞는 사람들로 그것을 구성해야지란 생각을 자주 한다.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좀 웃기다.


아마도 사람이니까 그럴 거다.

어쩌면 내가 고위 임원들을 바라보며, 그분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나 보다. 그분들도 외로울 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보다는 잘 알고 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겠지. 나보다 몇 배는 많은 월급을 받지만, 어찌 되었건 같은 월급쟁이자 직장인이니까.


연봉은 수 배 차이가 나는데, '뒤끝'의 크기가 그분들과 나의 것이 다르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뭔가 씁쓸함이 느껴진다. 함부로, 상대방을 싫다고 단정하지 말고 나는 누군가에게 '뒤끝'을 남긴 건 아닌지 돌아봐야지.


받는 돈이 많아지고 관심을 가져야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뒤끝'을 점검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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