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더 자주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야지 다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 혼자였다.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일들에 허덕이던 나는 시간을 볼 새가 없었다. 밖은 애진작에 어두워져 있었고, 야근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사무실은 고요했고, 나와 노트북은 외로웠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것들과, 퇴근 후에 널브러진 것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퇴근 인사도 기억되지 않았던 하루. 어느새 홀로 남겨진 날. 집에 가지 못한 월급쟁이는 그렇게 서러웠다.
그런데 왠지, 마음은 편했다.
총성이 빗발치던 전쟁터가 마침내 고요해진 것이다. 전화통을 붙잡고 싸우는 사람도 없고, 지시와 질책을 일삼는 상사도 없었다. 내가 요청한 일에 티 나게 인상을 찌푸리던 골칫덩이 후배도 없고, 각자의 KPI가 달라 지지고 볶던 다른 팀 사람도 가고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새로고침을 해봐도 이메일은 늘어나지 않았고, 나를 찾는 전화나 긴급회의도 (마침내)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내 '업(業)'에 집중했다.
마주한 모니터에서, 나는 내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짓누르던 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나는 비로소 내 '일'에 재미를 느꼈다. 내가 왜 출근을 하고,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에 대한 자각을 하면서. 그러게.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고군분투했던 것일까.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그렇게 새벽을 달려 일을 마무리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사무실을 나서며 맛 본 새벽의 공기가 알싸했다. 텅 빈 사무실과의 케미가 이렇게 잘 맞을 줄이야. 가끔은, 아니. 조금은 더 자주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야지 다짐했다.
잃어가던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