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事由)는 사유(思惟)에서 나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말했다.
즉, 그는 사유(思惟) 한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고, 일체가 허위일 수도 있으나 그는 '사유(思惟)'하는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면에서 직장은 나를 존재하게 한다.
내게 자꾸 사유(事由)를 묻는다. '어떤 일을 그렇게 하게 된 이유나 까닭'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번 달 매출이 빠진 사유는?"
"전년도 대비 신장하지 못한 사유는?"
"이익이 줄어든 사유는?"
"그 프로젝트가 잘 안된 사유는?"
물론, 다른걸 비슷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이번 달 매출이 높은 사유는?"
"전년도 대비 신장한 사유는?"
"이익이 늘어는 사유는?"
"그 프로젝트가 성공한 사유는?"
'사유(事由)'는 '사유(思惟)'에서 나온다.
사실 '사유(事由)'는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나의 노력과 갖가지 변수, 거시적/ 미시적 경제 현황과 신이 내린 운빨로 굴러가는 세상이니까. '사유(事由)'를 내놓으라는 요구 앞에, 이리저리 '사유(思惟)'해보지만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이건 글쓰기와는 다른 또 다른 창작의 고통이다.
'사유(事由)'를 잘 내어놓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그것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상대방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당신은 현황을 잘 모르는군요?"라고 매도되기 때문이다. 무섭고도 야멸찬 세상. 바로 직장인 것이다.
다시.
데카르트는 말했다. 생각하여 존재한다고.
나는 말한다.
직장인은 '사유(思惟)'를 잘해서, '사유(事由)'를 잘 내어 놓아야 한다고.
그래야 월급이 나온다고.
그래서 마침내 존재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