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Nov 25. 2015

진급 누락의 추억

추억이라 할 수 있을까

Hi! 젊음!

잘 지냈어?

오늘 하루는 어땠어?


"지나간 것에 대한 떠올림"


지나간 것에 대해 무언가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것을 보통 '기억'이라고 하지? 그리고 '기억'외에도 그것을 '추억'이라 할 수도 있을 거야. 때에 따라선 '악몽'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 '기억'은 그저 다시 떠올리거나 되살려낸 무엇이고, '추억'은 의미는 같지만 우리 정서상 보다 아련한 것이라는 이미지에 더 가까워.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추억'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가 아직도 맘 속에 무언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 '기억'은 머리로, '추억'은 가슴으로 한달까?


'악몽'이야 뭐 말 안 해도 알겠지? 그저 떠올리기 싫은 것.

그것이 기억이든 추억이든.


앞의 제목처럼 난 오늘 '진급 누락'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 그런데 '악몽'에 가까운 일이었을 그것을 굳이 '추억'이라고 표현을 했어.


거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거든.


"시대가 달라졌다!"


말 그대로 시대가 달라졌어.


지금 부장급 이전의 세대는 소위 말해 '성장의 시대'였어. 말 그대로 우리 산업의 성장, 그리고 개인의 성장이 함께 그 궤를 같이한 시대였지. 하지만, 요즘은 좀.. 아니 많이 달라. '성장 정체의 시대' 또는 더 이상 성장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대야.


그러다 보니 위로는 적체가 워낙 심해 차장, 부장의 수가 매우 많고 신입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들로부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주요 원인 이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진급이 예전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되는 시대가 아니야. 심한 경우 사원에서 대리로의 진급이  누락되는 경우도 있어. 물론, 심한 결격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그저 T.O (Table of Organization)의 할당량에 따른 거지.


더불어 우리 회사의 경우엔 '사원-대리-과장-차장'의 연차수가 기존  '3-3-4-4년'에서 최근  '4-4-5-5년'으로 늘어나기도 했어. 쉽게 생각해보면 18년 꼬박, 그것도 진급 누락 없이 다녀야 기어이 '부장'을 달게 된단 이야기야.


"미안하네 송대리, 이번 한 번만 이해해주게!"


나의 진급 누락은 '대리'에서 '과장'으로의 진급 때였어. 사실 앞에서는 '추억'이라고 포장했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 정말 '악몽'과도 같았지. 믿기지도 않았고.


아마 2010년의  겨울쯤이었을 거야.

야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상사가 다가와서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어.


그리고는 나에게  말씀하셨지.

"송대리, 미안한데 이번 한 번만 이해해주게. 과장 진급 대상자 두 명 중에 이번엔 내가 다른 사람을 선택했네."


순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

주변에 쉽게 일어나는 일이라 해도, 막상 나에게 그 일이 닥쳤을 때 느껴지는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고. 그저 기분이 나쁘고, 억울했어. 왜 나인지에 대한 물음만이 맘 속에서 수 백번 되뇌어지고 있었지.


그렇게 그 해의 겨울은 정말 너무나도 추웠던 '기억'이 나.


"비로소 돌아보게 된 것들"


사람은 무언가를 잃고 나서 그제야 그 무언가를 돌아보고 깨닫게 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건강을 잃고 난 다음에야 내가 얼마나 담배를 많이 폈었는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던 건지...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 지를...


사실, 그 상사가 그 날 나에게  이야기한 것은 진급 누락에 대한 통보만이 아니었어.


"송대리, 자네는 일도 잘하고 대인 관계도 좋은데 왜 유독 나에게서 멀어지려 하는지 모르겠네. 상사인 내가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 적도 있었는데 말이야."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어.

맞아. 그 말이 사실이야. 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 규정하고 내 할 일만 똑 부러지게 하자  주의였거든. 그 당시엔.


그 당시, 나는 다른 부서에서 그 상사의 밑으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새로운 부서에 온 나에게 준 업무는 내가 기대했던 업무와는 매우 다른 업무였어. 아마 그 때문이었던 것 같아. 스스로 인정 못 받는다 생각하고, 치기 어린 마음에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던 때가.


그때서야 기억이 나더라. 언젠가 해외 출장을 함께 갔을 때, 주말에 함께 어디라도 둘러볼까... 하던 제의를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했던  그때를. 혹시라도 그렇게 될까 다른 약속을 잡고 훌쩍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 그 일을. 돌이켜보니,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상사라도 업무 역량이 비슷한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면, 나라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을 선택했겠다 싶어.


"진급 누락의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


앞에서 말했듯이, 그 '악몽'과도 같았던 일을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어.

시간이 흘러 '악몽'이 '기억'이 되었고, 깨달은 바를 곱씹으며 그것이 비로소 '추억'이 될 수 있었던 거지. 그때의 깨달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진한 향기로 나에게 남아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시킬 수 있는 에너지로 지금도 쓰이고 있거든.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상사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상사를 존경하고  사랑해야겠구나."라는 거였어. 정말 소중한 깨달음이었지. 지금도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고 항상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어.


그 상사와 맥주 한 잔을 한 바로 다음날부터, 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그 상사가 좋아하는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방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곤 했어. 예전이라면 무슨 아부냐며 손발이 오글거릴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러한 일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어. 물론, '진심'을 담아 그렇게 다가갔던 거지.


수년이 흐른 지금, 잠깐 한국 출장을 나가 그분을 만나 뵈면 환한 웃음과 함께 아직도 나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시곤 해. 그러면 나는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제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었던 걸요."라며 웃어넘기곤 하고. 그런데 말이야. 정말 그렇더라고.  그때 나의 그릇이 그 정도였다는 것이 이제야 보이더라.


또 하나.

내가 그 일을 '추억'이라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자체의 소중한 '경험'이라는 점 때문이야.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나는 잘나서 멘토링을 하는 것보단 오히려 부족해서, 못나서 그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고 함께 고민하는 와중에 배운 것에 대해 멘토링을 하고 싶거든. 즉, 나는 진급 누락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당당히(?) 위로를 할 수 있고 또 그 고민을 듣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지. 왜? 나도 진급 누락을 해봤으니까! 그리고 그 아픔을, 그 기분의 더러움을, 자괴감에 빠지는 그 순간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 '자랑'은 아니지만,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그 일이 비로소 '추억'이 된 거지.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 일을 한 번 더 겪을 거냐고 묻는다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 상태였다면  또다시 겪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추억'이란 좋든 나쁘든 소중한 거니까. 마음이 기억하는 거니까. 절대 잊을 수 없는 거니까.


 P.S


그러한 일을 겪지 않게, 스스로 알아서 미리 깨달았다면 더 좋았을 수도...^^;;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 단축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