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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9. 2018

날씨

날씨 앞에 직장인은 정직하다.

"오늘 출근길은 바람이 매섭게 불겠습니다. 체감 온도는..."

"오늘 퇴근길은 폭염에 유의하셔야겠습니다. 미세 먼지도..."


직장인은 날씨에 민감하다.

그것을 아는지, 방송사도 일제히 출퇴근길을 걱정해준다. 대한민국 월급쟁이 1800만 명은 날씨 뉴스에 귀를 쫑긋한다. 직장으로 향하는 길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그리 특별한가 보다. 하긴, 사무실을 들어서면 시작되는 매일이 같아 보이는 일상보다는, 출퇴근 길의 날씨는 좀 더 변화무쌍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비가 오면 부침개가 떠오르며, 추운 날씨엔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향하도록 날씨는 그렇게 직장인인 나에게 여러 신호를 보내거나 무언가를 부추긴다.


최강 한파가 찾아오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총총하다.

옷을 입은 것인지, 옷이 사람을 집어삼킨 것인지 모를 얼굴마저 꽁꽁 감싼 직장인들은 저마다의 밥줄을 찾아가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은 입김을 곧이 드러낸다. 그것은 숨길 수 없다. 숨 쉬는 존재라면 입김이 나오지 않을 리 없으니까. 연료를 활활 태워 연기를 뿜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차와 같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에너지를 태워 입김을 뿜으며 나아간다.


최강 폭염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은 휘늘어진다.

걸쳐진 옷이 거추장스럽고, 땀의 흐름은 끊임이 없다. 우리 몸의 60~70%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다.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에게 감사해하며, 잠시라도 태양의 뜨거움을 마주하면 시원한 사무실의 내 자리가 최고라며 그곳을 그리워한다.


날씨 앞에 직장인은 정직한 것이다.

추우면 입김을 내어 보내고, 더우면 땀 흘리니까. 아무리 각자의 사회적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그것들은 숨길 수 없다.


날씨는 직장에서 고마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 아침 인사를 대신하거나, 잘 모르는 다른 부서 사람과 엘리베이터에서 한참을 마주쳐야 할 때 유용하다. "오늘 날씨 정말 춥죠? 또는 덥죠?" 이 한마디면 굳이 사생활을 터 놓고 이야기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다. 그냥 있기엔 멀뚱하고, 대화하기엔 짧은 순간에 날씨는 그렇게 서로를 이어주고는, 그래도 저 사람과 어색하지 않게 그 순간을 잘 모면했다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날씨와 관계없이 출퇴근을 하는 건 직장인의 숙명이다.

날씨와 관계없이 월급을 받으려면 말이다. 결국, 온도의 높낮음과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대기의 움직임도 누군가의 생존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아니면 마지못해서든 출퇴근하는 모든 존재에겐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날씨'로 시작해 '생존'이라는 거창한 말을 끄집어내고, 내가 출근하는 이유까지 되새기게 되었다.

그건... 순전히 오늘 날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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