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29. 2018

준비운동

준비운동을 할 새도 없이 나는 또다시 앞으로 달려 나간다.

농구를 하다 종아리에 쥐가 났다.

지긋한(?) 나이에 농구를 한 내 잘못이다. 그런데, 분명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을 웬만큼은 한 것 같았는데. 잠시 잠깐의 준비운동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준비운동을 하지 않았다가, 몇 배를 더 힘을 들여 고생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도 못하는 수영을 준비운동 없이 덤볐다가 양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갈 뻔한 적도 있었고, 준비 없이 산을 올랐다가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내려오면서 발목이 비틀거려 더 위험한 때도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건강에 대한 자만과, 내 몸 상태를 잘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문득 직장생활이 준비운동 없이 시작되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그걸 잊었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면서, 나는 준비운동을 했던가. 그런 기회가 있긴 했던가. 취업이라는 신호탄과 함께 쉴 새도 없이 달리고 달려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는데. 마음의 종아리에 쥐가 나고, 심장에 무리가 갔던 순간들이 새삼 떠올랐다.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뛰었던 순간이나, 뛰고 싶지 않아도 러닝머신의 바닥처럼 온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니 꾸역꾸역 달려 나갔던 내 모습도 오버랩되었다.


이 땅 위의 수많은 직장인들은 아마도 나와 같을 것이다.

준비운동 없이 뛰어든 숨 가쁜 레이스에서, 우리는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 실전'이란 무게감을 양쪽 어깨 또는 양쪽 종아리에 동여맨 채. 내가 원하지 않는 거리만큼 나아가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닌 정해진 쪽으로만 가야 하는 운명. 달리다 보니 상사가 되고, 꼰대가 되고, 직장을 나가야 할 때가 오고. 신호탄에 화들짝 놀라 우선 뛰긴 뛰는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디로 뛰어가는지 알지 못하는 직장인의 처지는 참으로 안쓰럽다. 그래서 간혹, 자주, 조금은, 많이 난 내가 안쓰럽다.


물론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속도를 좀 줄여 빨리 걸을 때도 있고, 슬럼프라는 친구를 만나면 기어가기도 한다. 뛰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기도 하고, 전력 질주를 하며 내가 모르던 나의 능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주 불어오는 바람은 맘껏 누리기도 하고,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업고 좀 더 빨리 앞으로 가기도 한다. 일이 재밌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누구보다 빨리 승진할 때도 있고, 또 누구보다 느리게 갈 수도 있는 직장은 그렇게 서로의 레이스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레이스에서 준비운동은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준비운동 없이 취업이라는 신호탄과 쉬지 않고 달려온 직장생활.

사무실 칸막이 위로 고개를 쭉 내밀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과 나에게 경의를 표하며, 준비운동을 할 새도 없이 나는 또다시 앞으로 달려 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