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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9. 2018

뉴스

각박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직장인의 각박함은 자의가 아니다

각박하다.

뉴스가.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경제는 언제나 힘들고,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쉽게 잊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죽음은 오랜 시간 회자된다. 누군가의 그것은 법을 바꾸기도 하고, 온 나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사건 사고는 터지고 나서야 수습책이 나오곤 한다.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이때다 싶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로남불의 정치 군상들이 고개를 치켜든다. 뉴스는 그렇게 정형화되어 있다. 사실 새롭지도 않은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누구일지가 관건. 그것은 나 일수도 있고, 내 주위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각박한데, 사무실은 고요하다.

아니, 다른 방식으로 각박하다. 어디선가 누군가 목숨을 잃고, 무언가가 무너져 내려도 그것을 안타까워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눈 앞에 놓인 보고서에 열중한다. 당장 월급이 끊기지 않았고, 내가 있는 곳이 무너지지 않았으며, 내 주위 동료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기에. 내 주위의 모든 것은 아직 '뉴스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누가 퇴사를 했다더라, 누가 어떤 상사에게 깨졌더라... 등이 더 신선한 뉴스다. 나름의 각박함이다.


누군가가 사이렌을 울리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급박하게 구하려 달려갈 때, 난 상사가 지시한 출력물을 가지러 뛴다. 이 순간만큼은 그것보다 급한 일이 없다. 혹여나 컬러 프린터기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 그래서 상사가 원하는 제시간에 그것을 가져다주지 못해 이런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냐는 소리를 들을 마음의 두려움을 견주어봤을 때, 생명을 구하러 가는 급박함과 출력을 위해 뛰어가는 그것의 크기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 두 가지 모두 '생명', '생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에 무심한 직장인은 그렇게 각박하다.

하지만, 그 각박함이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 더 각박한 것이다. 보고서 하나에, 출력물 하나에 인정받아야 한다는 매일의 삶이 각박하니, 각박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각박함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직장인을 각박한 사람들이라고 쏘아대지 말아야 한다. 


그건 너무 각박한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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