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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5. 2018

막말

'막말'은 받는 사람으로부터 완성된다

"나 요 근래 살이 5kg이나 쪘어. 나이 들어서인지 잘 안 빠지더라.
더 쪄서 너처럼 되면 어떡하지?"


잠시 머리의 회로가 멈췄다.

이 말을 툭 던진 같은 팀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난 그 말을 쫓아가지 못했다.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었다. 싸우자는 건가? 점심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던 길. 밥도 맛있게 잘 먹었고 걸어오는 내내 나누었던 이야기와 지금까지 지내온 관계를 돌아봤을 때, 분명 시비는 아니었다.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 일련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자신은 스스로가 막말을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막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던져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배려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들어서 기분 나빴던 말은 잘 기억하지만, 내가 그와 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있단 생각은 하지 못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 선배는 '막말'을 하지 않았다. (의식하지 못했으니까) '막말'은 받는 사람으로부터 완성된다. 마음에 상처가 나거나, 기분이 확 나쁘거나 함으로써.


나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평소에 먹는 걸 좋아해서 마른 체형이 아니라, 보통에서 조금 넘는 통통함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는 몸매가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는 말. 던진 사람은 재미로 던졌지만, 맞은 개구리는 그곳을 지나간 것이 잘못일까? 돌 하나에도 생명을 달리할 수 있는 가련한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직장에선 막말이 전장의 총알처럼 여기저기 빗발친다.

이것만큼 직장인의 품격을 깎아내리는 것도 없다.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거나,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힘든 이유다. 이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은 관계에서도 막말이 오가는데, 업무와 감정 그날의 스트레스와 연관된 상황에선 어떨까. 같이 월급 받는 사이끼리 왜 이러고 사느냐 말이다 우리는.


때로는 풀리지 않는 업무로 인해, 때로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또 때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막말을 던져대는 사람들. 또는 그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막말'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의 뇌를 열어, 그 안에 '배려'라는 회로를 넣어 주고 싶다. 물론, 나도 가끔 나의 뇌를 열어, 그것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아무리, 누가 무슨 말을 한들 그 막말을 듣고도 머리의 회로가 멈추지 않으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얼마나 더 큰 내공이 필요할까. 


그나저나 선배의 막말을 듣고 살을 빼면 왠지 지는 느낌이니, 다이어트 따위는 당분간 하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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