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29. 2018

바람처럼

바람도 무작정 자유롭지만은 않다.

물이 흐르는 서울 한복판에서였다.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한 장식과 이벤트가 한창인 저녁. 이름 모를, 나 지긋한 가수가 기타를 매고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모르는 노래에 박수를 보냈다. 따라 부르지는 못해도, 모두가 들떠 있는 분위기는 그 리듬과 선율에 맞추어 사람들을 요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곡이 끝나고 그 가수는 기타를 뒤로 매고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저는 바람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그 어디에라도 불고, 어디에라도 이를 수 있는. 그런데 그렇게 살면 굶어 죽겠지요. 그래서 노래를 하는 무대에서만큼은, 제가 꿈꾸던 바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바람을 담아 만든 OST 한 곡을 선사해드리겠습니다."


제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영화의 제목에 삽입된 그 노래는 가사가 참 자유로웠다.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바람처럼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가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고픈지, 그 형태가 다를 뿐. 결국 모두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은 마음과 영혼 한구석에 각자의 다른 크기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가수가 '바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이유도, 결국 '자유'를 위해서였을 테니까.


'자유'는 누구나 원하는 개념이겠지만, 어쩐지 직장인에게 그것은 더 특별해 보인다.

직장인은 그것에 목마르다.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휴가를 가지도 못하는 존재에게, '자유'란 단어는 소원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무실로 향해야 하는 숙명, 어느 하루라도 일탈하여 바람처럼 훌쩍 떠나버릴 배짱도 없다. 그러니 '자유'는 직장인에겐 그저 허공을 떠다니는 상념이다. '월급'과 '자유'를 맞바꾸었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의가 아니다. 바람이 되고 싶었다던 그 가수도, 자신이 바람이 되면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바라던 '자유'를 무언가와 맞바꾸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람도 그리 자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바람은 스스로 발생할 수 없다. 그것은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기압차에 따라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일 뿐이다. 바람이 부는 것은, 결국 바람의 의지가 아닌 것이다. 더불어, 바람은 스스로의 속도를 조절할 수 없다. 그것이 미풍이 될지, 태풍이 될지는 기압이 정해주는 것이다. 더불어, 마찰력, 주변 지형, 지표 온도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바람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 우리네들의 허상과 바람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러니, 자유로워 보인다고 부러워만 했던 것들도 결국 마냥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깊게 파고들어 알아낸 뒤 위안을 삼는 것이 조금은 더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자신이 안쓰럽 하지만.




'직장내공'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매거진의 이전글 단지, 직장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