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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2. 2019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착각

결국, 아이들이 나랑 놀아준 것이다!

출장을 다녀와 시차 적응으로 힘들어하며 일어난 주말 아침. 아니, 정오 5분 전.

아이들은 이미 깨어 아침도 먹은 뒤였다. 평소 아침엔 학교 가라고 깨우고, 아이들은 이불속으로 숨는 것이 일상인데 주말 아침에 아이들은 항상 일찍 일어난다. 가끔, 아이들을 청개구리라고 놀려대는 이유다.


아이들의 얼굴엔 '심심해요'란 글자가 네온사인처럼 켜져 있다.

내 얼굴에도 '아빠가 좀 피곤해요'란 글자를 떠올려보지만, 아이들은 본척만척이다. 하긴, 일도 바쁘고 출장도 많아서 아이들이랑 놀아준 기억이 저만치다.


"오늘, 아이들이랑 좀 놀아주려고!"

"괜찮겠어? 오빠 피곤하잖아." 와이프가 말했다.

"응, 괜찮아. 오랜만에 좀 놀아주지 뭐!"


같이 놀자는 말에 아이들은 신나 옷을 잽싸게 챙긴다.

이것도 학교 갈 때보다 훨씬 빠르다.


아이들은 운동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축구를 좋아하는데, 출장을 다녀온 비루한 체력의 직장인에겐 그게 그렇게 고역일 수 없다. 물먹은 휴지 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공을 챙겨 나간다. 골키퍼와 키커, 패스하는 사람의 역할을 바꿔가며 열심히도 해댔다, 축구를. 남자 셋이 모여 그런가. 공을 가지고 놀다 보면 '필'을 받는다. 첫째가 탁구를 치고 싶다는 말에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탁구장에서 또 한 시간. 똑딱거리는 공을 보며 우리는 무수히도 웃어댔다.


"아빠랑 같이 목욕탕 갈까?"

"네~~~~!!!!" 아이들은 다른 목소리로 같은 소리를 질렀다.


탕 안에서 마주한 우리는 웃고 있었다.

놀라운 건, 내 몸은 이내 가벼워졌고 업무에 찌들어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는 것이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뜨거운 물에 녹은 설탕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셋이 마주하는 동안 시간은 즐겁게 흘러갔다.


아이들과 '놀아준다'라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다.

결국, 힐링을 받은 건 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나보다 더 바쁘다. 나는 '해야 하는 일'때문에 바쁘지만,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이다. 만화도 보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만들기도 하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색종이도 접고 싶을 텐데.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포기한 것이지만,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것이다.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려운가? 어떤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이 더 맘 편한가? 


결국, 아이들이 나랑 놀아준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인생에 있어서 몇 시간이나 될까?

자라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찾아, 그 시간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이다.

가족보다는 친구, 애인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지고 있는 온갖 열정을 불태울 시간이 올 것이다.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해도,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해봐서 아니까.


그래도 난, 아이들에게 아빠가 놀아준다는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아직은 그게 통하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밀당'을 하는 것이 제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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