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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계절 Feb 13. 2022

8. 신제품 발표회

부활(Resurrection)

2038년 7월 10일 13:50


“아델린,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동호회 멤버들한테는 사실대로 알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여사님, 당분간은 비밀로 하기로 해요. 이건 래너드의 부탁이기도 해요”


아델린은 2달 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래너드로부터 당부받은 말을 떠올렸다.


“아델린, 만약에 내가 의식을 잃게 되더라도 몇 달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줘”


“왜?”


“누구에게라도 소식이 전해지면 어머니한테까지 알려질 수 있으니까... 염려 끼치기 싫어”


“그래도... 어떻게 비밀로 해. 만약 멤버들한테 연락 오면 어떡해?”


“내가 위임 모드를 설정해 놓았으니, 아델린이 나 대신 모든 처리를 할 수 있어. 전화, 온라인 모임 참석, 주문, 결제 모두 다 할 수 있도록 해 놨어. 그러니까, 아델린 생각이 닿는 대로 하면 돼”


그때만 해도 그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여사님, 이제 시간이 다 됐어요”


아델린은 래너드의 계정으로 신제품 발표회장 접속 링크를 클릭하여 들어갔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커다란 발표회장 무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대 위에는 '실감 콘텐츠 제작 플랫폼 Weflex 출시 기념 발표회 at 서울 코엑스 컨벤션 홀, Presented by CEO 김우현'이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 세계의 방송국과 기자들, 관련 업계 주요 인사, 투자자, 유명 배우,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참석하여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무대 앞으로 다가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래너드 시간 맞춰 들어왔네? 이 쪽으로 와~”


동규였다. 동규의 목소리가 이끄는 곳을 바라보니, 동호회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아델린은 목소리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래너드의 목소리 변환 필터를 통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제일 늦었네 ㅎㅎ 반가워~~”


숨죽이며 아델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바네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델린, 여기가 어디예요? 분명 래너드 방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한국으로 왔죠?”


“여사님, 이곳은 가상공간 속 한국이에요.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은 래너드의 동호회 멤버들이고요”


바네사는 발표회장에 온라인으로 접속한다는 의미가 전화 통화 정도로 생각했지, 이렇게 직접 방문하는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까 온라인 접속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기는 한국의 발표회장이고, 동호회 멤버들을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와 있잖아요?”

아델린은 가상현실 기술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 대해 바네사에게 추가로 설명을 해주었다.


“실제 하고 너무 똑같아요. 우리 인류는 지난 100년간 정말로 대단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 냈군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발표회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발표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콘텐츠 시장에 메가톤급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한국의 김우현 대표를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장내가 떠나갈 듯한 우레와 같은 박수가 발표회장을 가득 채웠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위플렉스 대표 김우현입니다.”


“콘텐츠 생태계의 역사를 바꿀 기념비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발품을 팔고,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기자 및 배우 여러분, 이제 온라인 콘텐츠 시장으로 여러분들의 활동 범위를 쉽고 자유롭게 넓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 위플렉스 플랫폼을 소개합니다.”


김우현 대표가 양손을 현란하게 움직이자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 위플렉스 앱 화면이 나타났다.

시나리오 업로드 메뉴를 클릭하고 작품 파일을 선택하자 순식간에 파일이 업로드되었다. 자세히 보니 최근 시나리오 작가 공모전에서 동규가 장려상을 수상했던 '신의 그림자'였다.


시나리오가 업로드되자, 등장인물 목록이 나오고 배우를 선택하는 화면이 나타났다.


“배우는 자동 추천 모드와 수동 모드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동 추천 모드의 경우 배우들이 사전에 설정해 놓은 크리에이터 등급과 매칭 되면서, 등장인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위플렉스 알고리즘이 최적화하여 추천해 주게 됩니다.”


“수동 선택 모드는 크리에이터 여러분이 자유롭게 신인 또는 기성 배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크리에이터 등급이 배우들이 사전 설정해 놓은 등급보다 낮은 경우, 배우의 동의를 받아야 됩니다.”


김우현 대표가 자동 추천 모드로 선택을 하자, 10초도 되지 않아 모든 등장인물에 맞는 배우 선택이 완료되었다.


그러고 나서 콘텐츠 제작 버튼을 누르자, Progress Bar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콘텐츠가 제작 중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1분이 지나자 시나리오의 1장에 해당하는 콘텐츠 제작이 완료되었다.


“시간상 오늘 시연은 작품의 1장까지만 하겠습니다. 통상적으로 런타임 2시간 분량의 영화를 만드는데 불과 10분밖에 소요되지 않습니다.”


김우현 대표가 콘텐츠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장엄한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주인공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무명작가 지망생 역이라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중견 배우 '김수현' 임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건 실제 카메라로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영상 속 등장인물의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등장인물의 말투와 행동, 자연경관 및 건물 모두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콘텐츠가 플레이되는 10분 동안 곳곳에서 탄성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 이제 수익금 배분 모델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작품이 위플렉스 플랫폼 내 크리에이터 여러분의 채널에 업로드되면 영상의 조회수에 따라 수익금이 지급됩니다. 크리에이터 50%, 배우 30% 그리고 저희 위플렉스 회사에 20% 가 배분됩니다.”


“영화, 드라마, 코미디, 광고 등 장르에 관계없이 이제 광활한 콘텐츠 시장의 주인은 여러분들입니다.”


디제니, 넷콜릭스 등 메이저 기업이 단단하게 걸어 잠그고 있던 콘텐츠 시장의 빗장이 풀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유서브에서 활약하고 있던 크리에이터들, 웹툰, 웹소설 작가들에게는 우물에서 뛰쳐나와 광활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처럼 압도적이고 가슴 설레는 순간이다. 


“와~~ 김우현, 김우현, 김우현” 


발표회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멈추지 않고 울려 퍼졌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제품 발표회를 기념하여 또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또 다른 이벤트라는 한마디에 발표회장이 조용해지며, 모든 이목이 김우현 대표에게 집중되었다.


“위플렉스 플랫폼 출시 기념으로 제1회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총 상금 10억 규모에, 대상 수상작에게는 희망하는 배우를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특전이 부여됩니다. 또한 대상 수상작은 콘텐츠 수익금 중 저희 회사에 배분되는 20%를 크리에이터와 배우 여러분들께 모두 돌려 드리겠습니다.”


“공모전 마감은 7월 30일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실로 콘텐츠 시장의 독립 기념일과도 같은 혁명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동호회 멤버들도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규야~ 네 작품이 오늘 전 세계적으로 소개되었으니 전 세계의 유명 배우들도 너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거야. 축하해~~”


가브리엘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잔뜩 녹아 있었다. 


바네사는 이 모든 내용이 완전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델린,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누구라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로 들리네요.”


“네 맞아요 여사님. 여사님이 다듬어준 작품도 배우를 잘 선택해서 위플렉스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요.”


바네사와 대화하던 아델린은 선택한 배우로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궁금증이 생겼다. 


“김우현 대표님~ 질문이 있습니다.”


“아 네 어떤 질문이죠?”


“저는 '20세기 작가 클럽' 멤버 래너드라고 합니다. 만약 선택한 배우가 신인이라서 그동안 출연한 작품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네 좋은 질문입니다.” 


“배우로서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은 위 플렉스 앱에 본인이 출연한 작품을 먼저 등록해야 합니다. 출연한 작품 영상이 1개 이상 존재하고, 1시간 정도의 음성 데이터와 연기 데이터가 있으면 위 플렉스 앱의 알고리즘이 모든 영상처리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해 줍니다.”


“만일 필모그래피가 부족한 경우, 별도로 몇 가지 신을 직접 연기하고 영상을 캡처해서 업로드해야 합니다. 참고로, 신인 배우들을 위해 저희 위플렉스에서 별도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활용하시면 됩니다.”


“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대표님ㅎㅎ”


아델린이 판단하기에도 김우현 대표의 사업 모델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007년 애폴의 에어폰, 2018년 구골의 유서브가 만들어낸 신화를 이제 2038년 위플렉스가 그 바통을 넘겨받는 모습이었다. 


아델린의 질문에 이어, 한국 방송국 JOBC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우현 대표님, 지금 미국의 구골에서 대표님의 사업체를 1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를 팔 생각이 아직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콘텐츠 생태계의 민주화를 위해 제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앞으로 펼쳐질 콘텐츠 생태계의 지각 변동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38년 7월 10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이 되었다. 그러나,콘텐츠 생태계의 민주화가 앞으로 가져올 후폭풍을 제대로 예측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혁명과도 같은 변화의 파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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