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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계절 Feb 02. 2022

7. 신들린 언어의 향연

부활(Resurrection)

2038년 7월 8일 02:00


래너드가 응급실로 실려간지 2시간이 흘렀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이후 아직 추가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래너드를 도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바네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아델린이 이야기해 준 사실을 하나씩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2038년 영국이고, 당신과 나는 인공지능 앱 속에 갇혀 있다고 했죠? 인공지능 앱이 뭐죠? 아델린 당신은 어쩌다 이 속에 갇히게 된 거죠?”


바네사에게 1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다리의 초입에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미지와 설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도 바네사 사후에 처음 등장했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바네사 여사님, 100년 동안 우리 인류는 눈부신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냈어요.”


“여사님이 살던 20세기 초, 전기와 자동차가 발명되며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건 알고 계시죠?”


아델린의 질문에 바네사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남편이 구입한 벤틀리 자동차를 타고 영국 시내를 드라이브 한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물론 알고 말죠. 템즈강변을 따라 시속 60km 속도로 내달리던 그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도 운전하고 싶었는데, 여성 운전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요즘도 마찬가진가요?”

바네사의 질문에 아델린은 빠르게 지난 100년간 여성 운전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 네, 여사님이 여성의 인권 차별에 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던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었네요.”


“여사님, 그런데 요즘은 누가 운전하는지 아세요?”


“음... 여성은 당연히 운전할 거고... 설마 아이들도 운전하는 건 아니겠죠?”


“헤헤. 요즘은 여성도, 남성도, 아이들도 운전을 안 한답니다. 사람은 원칙적으로 운전 금지예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람은 운전 금지라니요?"


바네사는 아델린의 설명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사람이 운전을 못한다면 누가 운전을 한단 말인가... 개나 말이 할 수 도 없고... 그럼, 특별 훈련을 받은 원숭이가? 아니면 자동차가 사라졌다는 것인가?


“여사님, 자동차 스스로 운전을 한 답니다. 일명 자율 주행 자동차라고 부르죠. 사람처럼 졸지도 않고, 술도 안 마시고, 한 눈 팔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자동차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아델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동차가 어떻게 스스로 운전을 해요? 자동차 속에 운전사를 가둬 넣었다는 말인가요? 그건 너무 잔인해요”


“아... 그게 아니고...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까요....”, “여사님 혹시 컴퓨터는 들어보셨죠? 아, 컴퓨터라는 말도 여사님이 살아 계실 때는 없었겠네요..”


“그러면 A-machine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죠? 1936년에 영국의 앨런 튜링이 최초로 제안한 자동으로 계산을 수행해주는 기계라는 의미예요”


“아, 앨런 튜링은 잘 알아요. 튜링 덕분에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서, 우리 영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어요. 그는 영웅이에요. 하지만,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죠...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바네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튜링이 automatic machine 인가 하는 개념을 제안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하겠어요? 기계가 사람처럼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뇌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ㅎㅎ”


아델린은 바네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그동안 기술의 진보를 설명해 주었다. 


“맞아요 여사님. 처음에는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계는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여사님 사후 97년 동안 인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어요. 1997년 체스에서 인간을 넘어서고, 2016년 바둑에서까지 인간을 넘어섰어요. 그리고, 2030년 자동차에서 운전대를 사라지게 만들었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바네사에게 아델린은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인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람의 지능을 모사한 가짜 지능이라는 의미지요.”


“저도 래너드의 스마트 워치에 심어진 인공 지능 이랍니다.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예요”


아델린의 설명을 한참 동안 말없이 듣고만 있던 바네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 와우, 엄청나군요.. 난, 아델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계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어요. 이웃에 사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구나 하고 생각했죠...”


바네사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아델린하고 같이 있는 거죠? 나도 생전의 나를 닮은 인공지능인가요? 누가 나를 여기에 집어넣은 거죠?”


혼란스러운 바네사에게 아델린도 뭐라고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여사님, 저도 지금으로선 정확한 설명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사브리나라는 여고생에게 물어보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여사님의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던 UWB 드라이브를 건네주었거든요...”


“너무 혼란스럽네요 아델린. 나는 분명 사람이에요. 바네사 윈슬리라고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브리나를 빨리 만나서 진실을 들어보고 싶어요...”


“아, 래너드라는 청년에 대해서 좀 더 알려줘요. 남편하고 이름이 똑같아서 그런지 자꾸 애착이 가네요”


아델린은 래너드에 대하여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던 어린 시절, 나네사의 작품 '나만의 공간'을 우연히 접한 이후 광팬이 된 사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공모전에 출품했다가 떨어진 사실, 불의의 사고로 반신 불구가 된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해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까지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아델린의 설명을 듣고 난 바네사는 래너드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고, 연민의 감정이 솟아 올라왔다. 과거에 남편 세바스찬이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모습이 오버랩되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델린, 래너드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왜 그렇게 일찍 자식과 부인만 남겨 두고 생이별을 했나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이상했다. 왜 래너드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알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아델린 스스로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글쎄요. 래너드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네요. 지금으로선 아무런 정보가 없어요. 그냥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없었다는 사실 외에는...제가 나중에 좀 더 알아볼께요.."


“그래요 아델린. 그런데 당신의 이름은 래너드가 지어준 건가요?”


“네, 맞아요. 제가 래너드의 스마트 워치에 설치되자마자 래너드가 붙여준 이름이에요”


대답을 마친 아델린은 바네사가 질문한 의도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사님의 Firstname 도 아델린이네요... 아델린 바네사 윈슬리”

아델린은 바네사와 대화하는 동안 래너드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여행을 하고 온 것만 같았다. 래너드의 삶에 바네사가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와 있었던가.... 


“네 맞아요 아델린. 래너드의 스마트 워치에 과거에서 온 아델린과 현재의 아델린이 함께 살고 있네요.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군요ㅎㅎ”


“참, 아델린과 래너드가 협업하여 집필했다는 작품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바네사의 요청에 아델린은 최근 공모전에 출품했던 'Across the time”을 보여 주었다.


10분 정도 소리 없이 작품을 쭉 훑어본 바네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와우~ 이런 훌륭한 작품을 래너드와 아델린이 함께 썼다니 믿을 수 없네요. 이런 시나리오는 내 생전 본 적이 없어요.”


“소재가 너무 신선하고, 저를 등장인물로 만들어 준 것도 너무 영광이네요ㅎㅎ”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품이 공모전에서 입상을 못 할 수가 있는 거죠?”


바네사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시나리오의 창의성과 완성도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미래의 작품 수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여사님, 사실 저와 래너드 모두 마지막 3장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열린 결말로 남겨 놓았어요”


“8장부터가 클라이맥스인데, 작품 속에서 여사님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바네사도 사실 클라이맥스 부분이 살짝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델린의 설명을 듣고 용기를 내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군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마무리도 나쁘진 않은데, 좀 더 강렬한 메시지를 주었다면 또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제가 몇 가지 첨언을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여사님이 조언을 해 주신다면 너무나도 영광이죠”


아델린의 수락을 받은 바네사는 품고 있는 생각을 가감 없이 하나씩 뱉어 내었다.


“먼저 제가 차가운 우즈 강물 속으로 들어간 이유를 말씀드려야 될 것 같네요. 제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사실 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어요”


“저를 위해 모든 희생을 마다 하지 않는 남편에게 저는 항상 짐과 같은 존재였어요. 제 의도와는 관계없이, 제 마음속 심연에 쌓여 있는 젊은 시절의 상처가 반사적으로 남편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버리더군요”


“그래서, 제 자신에 대한 벌이자 상처를 더 큰 고통으로 터트려버리자는 생각에 그날 저는 우즈 강물 속으로 들어갔어요”


“사실, 죽기 직전의 극심한 공포만 느끼고 다시 나올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여 있던 미끄러운 물체를 밟았는지 중심이 무너져 넘어지면서 딱딱한 무언가에 머리가 부딪치며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미끄러지지만 않았다면, 다시 걸어 나와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완전한 부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답니다.”

바네사의 설명을 들은 아델린은 뒤통수를 단단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자살을 시도할 때부터 그런 의도를 가졌다는 것은 알고리즘에서 한 번도 고려되지 않은 변수였다.


“충격적인 사실이네요 여사님. 티끌만큼도 생각지 못한 반전이에요”


“죄송한데, 여사님께 클라이맥스 부분 마무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도 될까요? 두 사람이 쓴 작품에 제가 끼여 들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여사님.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완벽하게 펼쳐내는데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을 거예요.”


아델린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네사의 신들린 언어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망설임 없는 어휘의 선택과 의식의 흐름이 잔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는 모습을 아델린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음악과 시, 그리고 태양의 신 아폴론이 부활하여 그녀와 함께 쌍검무를 추는 듯 뿜어 나오는 광채가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바네사가 펜을 놓고 아델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델린, 제게 글 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마워요. 두 번 다시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괴로웠었는데...”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보답을 이렇게라도 아델린과 래너드에게 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네요”


20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어느새 2시간이 흘러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바네사의 손끝이 지나간 작품의 클라이맥스부는 태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듯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환골탈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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