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만 보고 해 본 대로 결정하지 않는다
2월 2일 오후. 새롭게 합을 맞춘 클라이언트와 첫 1개월 차 마케팅이 마무리되었고, 미팅을 하러 가는 차 안이었다. 이번 미팅은 매월 첫째 주마다 지난달의 광고 성과를 보고하고 후속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
대행 첫 달 후 미팅인 만큼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 가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성과는 어느 정도 좋은 편이었지만, 처음으로 데이터를 도입해서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였기에 괜히 긴장되고 마음이 불편했다.
우당탕탕 미팅을 마치고 난 후, 진행 결과는 긍정적이어서 미팅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대화는 생각보다 난항이었다. 세상의 모든 변화들이 처음에는 낯설듯이, 오감과 경험만을 사용해 결정을 내리고 지름길을 찾는 것에 익숙한 환경 속에서 데이터를 들이미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도입되지 않은 많은 곳에서 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사용자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이해하기 위해 눈을 가린 채 손으로 발을 더듬는 처음의 순간. 이렇게 데이터로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그 순간, 미팅 현장의 분위기와 담당자의 등쌀에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데이터 분석을 처음 도입할 때는 데이터의 크기보다 관점이 더 중요하다. 이번 클라이언트도 월평균 사용자수(MAU)와 일 평균 사용자 수(DAU) 모두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서비스였다. 에어브릿지, 믹스패널, 앱스플라이어와 같은 어트리뷰션 툴은 고사하고 구글 애널리틱스와 페이스북 SDK도 처음으로 설치하고 도입해서 이제 막 데이터 측정과 분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데이터 측정 방식이나 부족한 데이터 양보다는, ’데이터 측정은 복잡하고 수치와 용어는 머리가 아프니 도입할 생각이 없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더 문제였다.
아직 데이터가 도입되지 않은 곳에 데이터를 처음 들이밀면, 많은 구성원들은 의외로 무언가 감추고 싶었던 것이 드러날 것 같은 걱정을 한다. 각자의 기존 업무가 몇 개의 수치와 숫자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걱정. 데이터와 지표로 객관화된다는 사실에 이제 나의 직관과 경험, '감'이 주관적인 편견으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걱정.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조급해지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 안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인지 편향이 생긴다. 그래서 새롭게 데이터 측정을 시작하고 분석하며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기존의 안정적인 방식으로 주로 향한다. 간혹은 ‘지금은 이런 걸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면서.
하지만 잘못된 의사 결정을 피하려면, 조직 내에 축적된 데이터가 전혀 없더라도 데이터로 의사 결정을 하고 성과를 내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데이터부터 펼쳐보고 심플한 라인 차트부터 만들어 보면서 데이터로 성과를 낼 수 있다. 번거롭게 뭘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을 하나하나 업그레이드시킨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서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데이터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리고 하나의 숫자만으로는 서비스의 전환점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갖고 데이터 도입을 바라보고 계셨고,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데이터를 측정하는 것과 그 데이터가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마음이 없는 채로 데이터 전문가와 같은 의사 결정의 지름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궁금한 것, 마케팅 전략의 방향, 의사결정해야 할 사안들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를 통해 보는 마음가짐과 방법'을 디자인한다면 현재 일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조급함은 숫자로 해결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