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에서 본질로 더 깊게 파고드는 법
10월 27일 오전, 창의적으로 컨셉을 표현해보고 싶은데, 요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서 고민이었다. 기존에 프랜차이즈를 많이 담당해 보긴 했었지만 새롭게 맡은 이번 외식업계 프로젝트는 판매 품목 자체도 낯선 분야였고, 클라이언트는 여러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어떤 컨셉과 마케팅 전략이 먹히는지 보는 날카로운 눈이 있었다.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잘 디자인된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팝업스토어들과 동종 업계의 경쟁업체들을 살펴봤다. 엄청 유명하지 않은데도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선 걸 보고서는 놀라기도 했고, 트렌디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들과 독특한 맛과 마케팅 전략으로 명성을 얻는 곳이라면 나도 똑같이 디자인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프로젝트도 잘될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인스타그램 카드뉴스, 포스터, 인테리어, 오브제, 카탈로그, 회사소개서, 광고 이미지, 영상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선택적으로 차용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브랜드들의 성공한 사례나 디자인, 마케팅 전략, 이벤트를 보고 미루어 짐작해서 차용한 것이 눈을 끄는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멋지다고 감탄하는 부분을 따오고 이름을 새롭게 붙였지만 다 짝퉁일 뿐이었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없었다. 참 뼈아픈 실패였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마케팅의 꽃이지만, 그 모습만 흉내 내고 비슷하게 따라 하는 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은 그 뿌리가 되는 생각과 고민이 주는 감동, 그동안의 작업과정이었다. 그 이후로 멋진 프로모션이나 눈길을 끄는 광고를 보면서 나도 모방하고 싶을 때마다 생각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일례로 츠타야 서점 신드롬이 있다.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여러 브랜딩 도서들이 자주 꼽는 사례다. 이를 벤치마킹한 서점이나 카페가 국내에도 정말 많이 생겼는데,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처럼 감각적으로 책을 전시하고 통창을 곁들여 놓는 다던가 쭉 뻗은 책상을 배치해 놓고 모여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는 식이었다.
츠타야 서점은 '지식 축적의 공간의 필요성'이라는 기본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효율적으로 지식 축적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동선, 운영시간, 공간 배치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모습만 봤고, 그 생각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수익성이 높지 않은 서점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수익 모델을 날카롭게 다듬은 것도 츠타야 서점의 강력한 뿌리였지만, 대부분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고 외형적 컨셉만 모방하다 문을 닫은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많은 기업들이 타겟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눈에 띄는 팝업과 광고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처럼, 종종 브랜드의 성공에 기여하는 기본 아이디어와 작업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다른 브랜드의 성공 사례, 마케팅 전략과 레퍼런스를 보고 비슷한 것을 추측해서 디자인하는 것은 단지 외부적인 요소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게 다른 브랜드에도 다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와 컨셉, 아이디어, 자체적인 작업 과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와 프로젝트의 유일한 점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른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와 그 가치에 부합하는 기본 과정을 들여다보니 뿌리가 되는 아이디어와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더 견고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내가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걸 기획하고 만든 브랜드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