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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 Feb 13. 2023

모든 기획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

제안은 가시화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1월 3일 오후. 공들여 만든 기획안이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미팅 당시 분위기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선 임기응변으로 기존 안을 살짝 비틀었고, 결과적으로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돌이켜보니 왜 나에겐 뭔가 한 방이 없을까 하고 자책을 하곤 했던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초안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다. 킥오프였지만 첫 단추를 잘 꿰려고 너무 앞서가다 보니 공들인 노력이 아쉬워 자꾸 기존 아이디어를 지키려고만 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모든 괜찮은 아이디어도 초기에는 대부분 볼품없어 보인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고, 굳이 해서는 안될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되어 보인다.


하지만 초기의 무덤덤한 반응과 초안의 빈약함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갔을 때에만 그 아이디어는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제안을 가시화할 수 있도록 나의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휘둘리지 말아야 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제안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리서치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제안자인 내가 디테일을 충분히 고려하였는지 확신을 담아야 하고, 그만큼 깊이감 있는 아이디어인 건지 보여줘야 한다.


어차피 기획안이 대박인지 쪽박인지 미리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줏대 없이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상대방이 내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뭐든지 눈으로 보여줘야겠다 싶은 생각을 내려놨다. 꼭 기획서를 쓰다 보면  ‘뭔가 이런 거 하나는 들어가 줘야 구색이 맞춰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레퍼런스와 시각화에 집착했었다.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것들도 억지로 이미지화하고, 계획에도 없던 초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무슨 기획을 어떻게 떠올리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문제를 더 잘 풀어낼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것이 현재 가장 적절한 방법일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지 사진 몇 장, 노션 페이지의 문장 몇 줄일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기획안을 가장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정하는 게 나만 혼자 뿌듯해하는 PPT 수십 장을 만드는 것보다 더 나았다.


마지막으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가장 앞에 가시적으로 내세우는 것. 상대의 ’그게 되겠습니까?’를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래에 결정적인 것이라 인식된다면 기획안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기에 중요했다. 기획안 대로 성공한 결과 모습을 미리보기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이렇듯 우리가 살면서 타인과 협의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은 행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었다. 항상 내가 무슨 기획을 하였는가 보다 상대방이 그 기획을 이해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우리가 왜 이런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납득이 안 가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모든 일은 이해의 문제다. 지금 생각 나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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