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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 Feb 17. 2023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마케팅

건강한 비즈니스에 대하여


1월 19일 오전, 클라이언트를 앞에 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품은 계속 발전하고 매출은 늘고 있는데 수익은 전혀 늘지 않았어요." 여러 매출 지표들과 수익 구조, 비용이 빼곡히 적힌 스프레드 시트를 띄워놓은 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산식이 잘못된 걸까? 지우고 다시 쓰기를 몇 번. 하지만 계산식은 정확했고, 결괏값은 그대로였으며, 정신은 또렷해졌다. 클라이언트는 매출액을 늘리는 데 골몰하느라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많이 팔면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매출도 눈에 띄게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현 상황에서 마케팅비와 판매량을 무작정 늘린다면 이 브랜드는 곧 망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찬물을 끼얹어야 했다. 새로운 문제점을 정의하고, 생각을 바꾸고, 방향을 전환시켜야 했다. 문제점을 단계별로 하나씩 되짚어가며 살펴봤다.


이커머스 스타트업이었던 고객사 A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시장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 스마트스토어와 자사 쇼핑몰을 구축하고 3개월 간 퍼포먼스 마케팅을 전개했다. 그 후 어느 정도 제품 인지도와 꾸준히 매출이 상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A는 조금 더 과감하게 마케팅비를 투자해서 매출 규모를 높이고 싶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후속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하루에 매출이 30~50만 원, 100만 원씩 올라간다 하더라도, 성공이 아닌데 성공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들을 경계해야 했다.


우선 제대로 된 A의 손익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전체 비용을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눠서 계산하고, 예상 광고 수익과 ROAS를 변수로 광고 진행 시 목표 성과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제품 원가와 공정비, 임대료와 인건비 등의 대략적인 비용을 조심스럽게 요청드려서 공유받았다.



제대로 분석하면 계산이 복잡하고, 아무래도 민감한 정보다 보니 조금 간단하게 각색해 보자. 5만 원짜리 제품을 파는데 원가 및 공정비가 2만 5천 원으로 절반이었고, 그 외 고정비로는 매월 약 5백만 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그럼 광고 예산을 월 1천만 원 정도 소진한다면 고객사 A는 제품을 많이 팔면 팔수록 이득일까?


광고 목표를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어느 정도 실루엣을 잡을 수 있다. 우선 광고 목표를 설정한다. 이전 광고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광고 클릭당 비용(CPC)은 300~400원, 구매전환율을 2% 이상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면? 1천만 원의 광고비로 월평균 2만 5천 명의 잠재고객을 유입시키고, 500건의 구매 건수와 광고비 대비 매출액(ROAS) 250% 이상 달성을 추산할 수 있다.


이렇게 고객사 A는 한 달간 광고로 2,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매월 마이너스 250만 원이다. 광고비로 마이너스 1,000만 원, 제품 원가 50%로 마이너스 1,250만 원, 그 외 고정비로 마이너스 500만 원.

광고가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자연적인 유입과 구매를 배제해서 비약이 있을 순 있으나, 이커머스 초기 진출 브랜드가 초반부터 높은 자연 노출과 폭발적인 오가닉 유입 고객을 확보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광고비가 2배인 2천만 원으로 늘어난다면 해결될 수 있을까? 그래도 매월 수익은 0원이다. 광고비가 2,000만 원, 제품 원가가 2,500만 원, 그 외 고정비가 500만 원. 오픈마켓 입점, 카드사, 간편 결제 등등 각종 명목으로 빠지는 수수료와 세금처리 비용들을 더한다면 결국 마이너스다.  


손해가 나더라도 투자금으로 버티면서 브랜드 컨셉을 구체화하고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거라면 물론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사 A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시장의 반응을 봐가면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열심히 제품을 판매하면 성장할 거라 믿었던 막연한 미래에 차가운 물을 끼얹은 뒤, 시작 단계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손익 규모 모델링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렇듯 기업의 손익 구조 개선과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고객사 A와의 진솔한 대화 끝에, 집중해야 할 방향을 선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선 A의 상품 구성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검토했다. 수익성과 전시성을 기준으로 제품 구성을 재조정하고 가격 구조를 다시 정립했다. 불필요한 원가를 낮추고, 적정 수준의 수익을 확보했다.


단순히 가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수익성이 낮지만 잠재고객들에게 브랜드의 존재를 알리는 시그니처 제품 라인을 갖추고, 유입된 사용자들에게 제시할 수익성이 높은 킬러 제품을 배치했다. 구매전환율을 높일 수 있도록 자사 쇼핑몰을 재구성했고, 월 고정비를 낮추면서 적절한 광고비 규모를 협의했다.


시장은 점점 양분화되고 있고, 대기업은 더욱더 매스(mass)하게, 스타트업과 작은 브랜드들은 더 마이크로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했다고 하는 많은 창업자 분들과 스타트업 브랜드들이 '저게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일까'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면, 사실 사람도 돈도 여력이 없다.


그래서 명확한 손익 구조 파악과 전략 없이 남들처럼 움직이다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고, 허무지표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제대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기 위해 이렇게 모였고, 우리는 슬프게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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