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헛발질을 한 것도 창피하지만 적어보고 싶다.
1월 31일 새벽. 겨울 방학이 한창일 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마케터로서 그로스 마케팅 실무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매일 계속되는 강연이다 보니 전반적인 강연 개요는 이미 대학 측에 전달드렸었고, 강연 하루 전날 새벽엔 세부적인 강연 교안을 점검하면서 강연 계획서를 펼쳐놓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강연 계획서에서 몇 가지 키워드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취업 역량 강화와 실무 능력 향상을 위해'
'이론만으로는 쌓을 수 없는 현장 실무 경험을 전달하고'
그렇다. 그냥 교육도 아니고 '실무 교육'이다. 이 점이 사실 난 꽤 부담스러웠다.
이론을 다투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현장의 ‘실무’를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현업의 정보와 경험 사례를 비밀 보장의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실무 현장과 맞닿아 있는 진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방법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속마음으로는 나만의 업무 비밀과 실패 경험까지 솔직하게 오픈해도 괜찮을까 하는 밥줄 걱정을 했다.
이는 비단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팀 리드로서 팀원들에게, 새로 합류한 신입사원들에게,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도. 자주 하는 고민이었다. 어떻게 전달하는 게 가장 '실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가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었었나. 어떻게 경험하고 싶었었나 기억을 떠올려 봤다.
다들 그렇듯 나도 얕은 지식과 경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책도 사서 읽고 각종 아티클들을 요약 정리 했다.
유명한 강연과 컨퍼런스, 세미나들을 꾸역꾸역 찾아서 다니고, 화려한 경력의 업계 전문가와 연사들의 온라인 강의도 틈틈이 챙겨 들으면서 궁금한 건 어떻게든 질문하고 답을 찾았다.
하지만 늘 뭔가 투명한 유리에 가로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 자신의 과정을 남들에게 모두 보여주는 방식은 강연자나 저자의 리스크가 될 수 있어서라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내가 직접 경험한 지식과 경험치,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씩 보여주다 보면 나의 실무적인 능력과 결과물에서 빈틈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 빈틈을 보여주는 건 마치 내 단점을 직접 마주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강의 전날, 교안을 1시간 정도만 점검하고 잠들겠다는 나의 계획은 2시간, 3시간.. 점점 늘어났다.
단점 없는 사람이 없듯 나만의 실무 지식과 경험도 모자란 점이 있는 게 디폴트 값이다. 없는 데 있는 척하는 친구보다는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더 친해지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나의 실무 과정을 편집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았다. 서로 솔직할수록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 빈틈을 함께 찾아 개선해 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결국 부족해도 내 힘으로 해봤던 과정을 보여주자 마음먹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솔직해야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관이 '왕이 걷다 헛발질한 후, 이를 적지 말라고 명하셨다'까지 적었다는 일화처럼, 감정과 평가보다는 내가 경험한 현장을 실록처럼 우직하게 써 내려가보고자 한다.
그날 새벽, 문득 진솔한 관계를 맺는 브랜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것만이 나의 살길이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