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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 HAN Mar 24. 2022

기억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구루들 (2): 미치 케이포

최초의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1950년생의 미치 케이포(Mitch Kapor: 구글 한글 버전에서 미치 카포르라고 나오는데, 정확한 발음은 케이포이다. 본명은 미첼 데이비드 케이포이다.)는 유태인이고 예일 대학에서는 심리학, 언어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 학제적 공부를 했다 (1971년에 졸업인데 그 시절의 컴사이라...) MIT 슬론 스쿨에서 MBA를 하다가 그만 뒀다고 한다. 

미치는 벤 로젠의 후원으로 조나단 색스와 함께 1982년 로터스를 창업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그를 기억하는게 바로 로터스 1-2-3의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로터스의 첫 제품은 애플 II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제발 SW라고는 쓰지말자. 소.프.트.웨.어. 라고 명확하게 쓰기를 바란다). 였다고 한다 (Lotus Executive Briefing System). 

미치 케이포 (출처: USA Today)

잠시 로터스를 떠나 비지캘크(Visicalc) 스프레드쉬트로 유명한 비지코프에 들어갔다 다시 나와 색스와 함께 스프레드쉬트와 그래픽스 프로그램을 통합하기로 했다. 사실 PC에서 최초의 스프레드쉬트는 1979년에 나온 비지캘크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PC가 취미용 기기에서 (대부분 게임이나 갖고 놀기 위한 프로그램 중심이었고) 비즈니스를 위한 기계가 되었고, 6년 동안 70만 개 이상 팔렸고 지금까지 1백만 카피가 팔렸다고 한다 (당시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산다는 것이 아직 낯선 시절이었는데). (참고로 나도 1982년에 삼성전자 SPC-1000에 쉬트에 숫자를 넣으면 여러 종류의 차트를 그려주는 프로그램을 짜서 삼성의 제 1회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카세트 테입에 프로그램을 저장하던 허접한 MSX 기계에 베이직 프로그램으로)

애플 II에서 돌아가는 비지캘크 모습 (출처: 위키피디어)

1983년 1월 26일에 등장한 것이 로터스1-2-3이다. 1-2-3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스프레드쉬트, 그래픽스, 그리고 데이테베이스 매니저가 같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동안 나온 이 계열 프로그램에서 가장 강력한 놈이었고, 이를 통해 로터스는 1983년 세계 제 3위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다고 한다 (연 매출 5,300만 달러)

초기 로터스 1-2-3 화면 (출처: 위키피디어)

1985년에는 오히려 로터스가 비지코프를 인수하고, 1982년 멀티플랜이 마이크로소프트(이것도 제발 MS라고 쓰지 말자!!)가 소개했다가 쓴 맛을 보고 1985년에 엑셀이 나온다. 그 이후 얘기는 다들 잘 아실 것이고.

사실 케이포와 색스가 로터스 1-2-3를 만들 때 직원은 8명이었고 IBM PC의 PC-DOS 용을 만들면서 여기에 워드 프로세서까지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가 많아서 워드 프로세서 대신 데이터베이스 기능으로 대치했다고 한다. 


사실 케이포보다 색스가 프로그램을 더 잘짰기 때문에 케이포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했다.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 낸 것이 미치 케이포이고 그래서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드웨어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관계 같다). 지금봐서는 놀라운 일인 것이 이들이 8088 어셈블리 언어로 로터스 1-2-3를 짰다는 점이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나도 8085나 Z80 어셈블리어 프로그램을 많이 짜 봤지만, 이거 디버깅하는 건 정말 고통이고, 머리 속에서 기계 안에서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코드를 짜야 한다.


1984년에는 맥킨지 출신의 짐 만지가 사장으로 오면서 로터스는 더욱 더 마케팅 중심 회사가 되었다. 로터스의 자세한 역사는 여기를 참조하면 된다. 1995년에 IBM이 로터스를 3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로터스의 역사는 끝난다. 이 때 IBM이 관심을 가진 것이 로터스 노츠(Notes)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노츠를 만든 레이 오지(Ray Ozzie)를 소개할 때 하도록 한다. 


미치 케이포는 이후 디지털 권리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1990년에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을 존 길모어, 존 페리 바로우와 함께 설립한다 (80년 대 존 페리 바로우에게 메일 보냈더니 바로 답장을 보내 한국의 인터넷 인권 상황에 관심이 많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를 통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보호하고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해 활동한다. 1994년까지 케이포는 EFF의 의장이었으며, EFF는 아직도 이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단체로 활동 중이다.


미치 케이포는 지금도 투자자로 활동하지만, 인터넷 초기 시절에 UUNET, 리얼 네트웍스, 그리고 요즘 메타버스 때문에 다시 주목을 받는 '세컨드 라이프(SL)'의 린덴 랩에 초기 투자자로 활동한다. 2003년에는 린덴 랩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특히 케이포는 세컨드 라이프에 투자한 최초의 외부 투자자인데, 회사가 어려울때 사이트를 보고 바로 수표를 써줬다고 하며 '세컨드 라이프는 바로 마이스페이스가 갔어야 하는 모습'이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여러 예술가들이 그 안에서 자기만의 작품 활동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지켜야 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치 지금 페이스북이 메타가 되면서 미래의 모습을 얘기한 것에 데자뷰가 느껴진다. 


이후 미치 케이포는 2002년 후반부터 모질라를 지원하다가 2003년에 모질라 재단을 설립을 돕고 첫 의장이 된다. 당시는 AOL/넷스케이프와 분쟁 문제가 있었고 파이어폭스도 없던 시절이지만, 그의 도움을 받아 재단으로 만들어진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아는 모질라 재단에도 그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잘 모를 수 있다. (패스트 컴퍼니 잡지의 기사에서는 당시 모질라가 오픈 소스의 해리 포터 같았다고 했다)


2000년에는 케이포 센터(정식은 소셜 임팩트를 위한 케이포 센터)를 아내와 함께 설립하는데, 기술 포용성과 사회적 임팩트에 초점을 맞춰 비영리 기관에 투자도 하고 지원도 한다. 그 안에 케이포 캐피털은 벤처 캐피털 역할을 하며, 2018년 기준으로 160 곳 이상 투자를 했고, 주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초기 스타트업이다. 


케이포 센터는 테크 분야에서 인종 차별, 경제적 불평등, 기후 문제 등을 다루며 오클랜드 지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커뮤니티 허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가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중 한 곳이 SMASH인데 고등학교와 칼리지에 있는 유색 인종을 대상으로 STEM 교육을 지원하고 다양성과 사회적 의식을 갖춘 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일을 한다. 학교에서의 테크 교육


이번 글은 좀 길어졌는데, 워낙 활동 내용이 많은 사람이며, 초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만들어야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고, 번 돈을 정말 의미 있는 곳에 많이 지원한 모범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루들은 우리가 소프트웨어 개발하거나 사업을 하고, 산업의 이슈를 풀고자 할 때마다 어디에서나 두둥 하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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