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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질 현 Feb 07. 2024

정답? 삶에는 없다.

배움, 성장의 과정 속에 경험하는 실패와 성공 모두 옳다.

사회는 창의력을 요구하면서 학교는 왜 시험문제 정답으로 사람을 줄 세울까? 

종이 속 객관식/주관식 문제를 풀어 나의 전공을 결정했었다. 아무런 경험도 없이......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실수는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성적은 나의 암기 및 문제 풀기 실력을 반영했다. 시험 점수를 만들 때 나의 의견은 1도 포함되지 않는다. 객관식은 물론이고 주관식 문제마저 나의 생각, 아이디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자의 의도, 화자의 의미 등을 찾는 연습만 할 뿐이다. 암기를 열심히 하고, 타인의 생각을 읽어내는 연습만 했지, 내 마음속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나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성적을 만들어 대학에 갔다. 생물쪽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갔지만, 나는 해부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성적에 맞춰 적당히 타협한 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더 방황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다


의무교육은 왜 하는 것일까? 

초중고 의무교육 시간 동안 문해력과 수리력, 응용력 등을 쌓는다. 친구들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성도 익힌다. 무엇을 위해서? 결국, 의무교육 시간은 기초 교양을 쌓으면서 여러 영역 중에서 내가 더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자질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시간이었다. 여러 과목을 배우는 이유는 내가 더 잘하는 영역, 관심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함이다. 역량이 발휘되는 곳을 알 수 없으니 한꺼번에 다 익혀서 그 속에서 하나씩 찾는다. 나의 쓰임은 무엇인지, 어떤 일,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의무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찾는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 속 학교는 대학입학을 위한 점수 만들기 암기/문제 풀기 시간에 더 집중되어 있다. 객관식 정답을 잘 맞히는 스킬에 열중할 뿐이다. 암기한 것을 쏟아내 정답을 맞히는 시간이 끝나면 그때부터 전공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합격만 하면 된다'를 목표로 적당히 마음에 드는 과를 선택하고, 대학에서 다시 진로를 찾는다. 나의 전공 선택이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어느 한 영역에 특출 난 사람이 부러웠다. 특정 과목에 점수를 더 잘 받는 사람이 부러웠다. 모든 과목에서 고르게 점수를 잘 받았던 모범생은 명문대에 갔지만, 그곳에서 또다시 스펙 쌓기용 점수 만들기를 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였다. 기초지식을 갖추는 동안 나의 장점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집어넣기만 하고 제대로 쏟아낸 적이 없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를 표현한 적이 없다.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이렇게 지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나의 생각을 펼치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며 사고하고, 프로젝트 통해서 나의 관심 분야,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직접 찾아 행동하며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있었다. 


학교, 학벌을 "기회를 갖게 해주는 훌륭한 액세서리"라고 어느 유명 강사는 표현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보니, 사회생활을 해보니, 아이를 낳아보니 '왜 학창 시절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찾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크게 밀려왔다. 나는 왜 시험 점수만 열심히 만들었을까? 


결국 삶은 세상 속 나의 쓰임을 찾기 위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학교 수업은 그 일환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강의를 듣고 암기해서는 나를 알 수 없다.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나는 무엇에 더 뾰족한 관심을 갖는지 직접 표현하고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무엇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지, 어떤 것을 더 배우고 싶은지 등은 해본 후에야 알 수 있다. 여러 번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나를 다듬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실수와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도 학창시절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내에서 충분히 경험해봐야 한다. 


스스로 찾고 표현하며 익힌 것은 자리에 앉아 눈으로만 암기한 것보다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 온전히 몰입해서 배워가는 시간. 거꾸로 캠퍼스의 학습방식이 더 끌렸던 이유이다. 교과수업시간은 배움의 융합과 적용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시간이었다. 프로젝트 수업은 세상 속 이야기였고, 학생들의 목소리로 사회 속 변화를 만들 가능성이 함께 열려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변형, 적용 가능하다. 세상 속 일들에 참여해서 배움의 주인공이 내가 된다. 자기 주도 학습이 거창한 문구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곳이다.


그렇게 배움의 주체를 학생으로 둘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곳. 배움을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곳. 

 Student Agency! Co-Agency!

학생 주도성을 믿고 협력적 주도성을 지원하는 학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학부모가 되어보니 아이의 주도성을 믿어주고 마음껏 펼치게 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은 나이지만 부모새로운 배움의 방식과 기준, 그리고 그 가치를 알고 있으니 우리 아이는 책걸상에 앉아 글로만 세상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의 삶이 그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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