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KTX의 키다리 아저씨
철컹 철컹, KTX 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좌석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가방에서 물건을 뒤적뒤적
왜 꼭 넣어 둔 물건은 찾을 때 보이지 않는건지.
기차는 오늘따라
유난히 흔들리는 것 같은건 기분 탓일까,
그러다 코너를 도는건지 거침없이 흔들리며,
앗차 하는 순간과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허공을 가르고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찰나의 그 순간은 만화처럼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커피의 행방을 보니,
황당할 정도로 한방울조차 내게 떨어진 것 없이
옆자리 승객에게로...
옆사람 바지를 흥건히 적시고,
옆사람 좌석 밑으로 웅덩이를 만든 채 떨어져 있었다.
하.. 당황할 시간도 없이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화장지를 꺼내 건네드렸다
좌석 바닥에 흥건한 커피 또한 닦고 싶었지만 그분이 일어나셔야 가능한 일.
바닥을 닦고자 하는 신호를 조심스레 보냈더니,
갑자기 본인이 밑바닥을 닦기 시작 하셨다
떨어진 커피잔도 직접 주워서 건네 주셨다...
제가 닦겠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려도
오히려, 내게 따뜻한 미소로 괜찮다고 하시는데
순간 예수님 인줄 알았다....
그분의 바지는 이미 젖어서 닦으나 마나였고,
바닥에 쏟아진 커피는 결국 그분이 다 닦으셨다...
상황이 일단락 되고,
감사하다고 죄송하다고 다시한번 말씀 드렸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또 너무너무 죄송스러워서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분은 내리실때까지 불편한 기색 하나 없으셨다.
나는 나대로 가시밭에 앉은 듯, 좌불안석 이었다.
그분이 나보다 먼저 내리셨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그 분은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그 뒷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튀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 크게 꾸미지 않은 겉모습
그래도 그순간 내눈엔
그분이 소지섭이고 강동원이고 지창욱이었다.
순간,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차 하는 생각과 아쉬움이
속도를 내는 기차에 맞추어 짙은 한숨으로 묻어 나왔다.
연락처좀 받아 놓을껄,
하다못해 열차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라도 뽑아 드릴껄...
내 연락처라도 드릴껄....
이미 속도를 내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쉬운 한숨만 새어 나왔다
몇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날의 일은 생생하고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했던 기분이 다시금
확연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꽤 키가 컸고 말랐고
괜찮다며 미소지어 주시던
어렴풋한 미소만 잔잔히 떠오른다.
그런상황에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반대의 입장이라면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일거다.
그분의 품격 인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또 조금은 더 선하게 마음의 여유를 두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분의 선한영향력이 내게 진하게 와 닿았다.
나도 일상에서 내가 스치고 마주치고 지나치는 이들에게 선한영향력이 살포시 흐를 수 있도록
나를 지나친 이들이 미소띄며 지나가기를
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려본다
아마 그 분은 여전히 멋지게 살고 계시겠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말이다.
그분의 삶이 언제나 안팎으로 풍요롭고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며, 매일같이 웃는일이 가득하시길
마음 가득 바래본다.
다시한번 그래도 또 감사했다고 ,
메아리쳐 어딘가 계시는 그분의 귓가에 닿기를 바라며
살포시 인사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