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첫사랑의 뜨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얼마 전.
친구 동생과 친구, 그리고 또 다른 친구와 나는 회 한 접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네 명이서 소주 3병 정도를 비우니 다들 취기가 올랐는지 평소에는 안 하던 얘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직장 이야기서부터 가족 이야기를 거쳐 연애와 결혼이 주제가 됐을 때였다. 친구 동생이 입을 열었다.
"오빠들은 결혼 언제 하고 싶어요?"
결혼이라. 결혼이라는 것을 지금보다 어릴 때는 하나의 족쇄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레 내 삶에 대해 소홀해지고 애나 키우면서 살게 될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난 35살쯤 결혼할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랬다. 하지만 두 번의 질펀한 연애 끝에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은 여러 사람 만나며 시간낭비 말고 빠른 결혼을 원하게 되었다.
"난 빨리. 내년에라도 하고 싶어."
"난 좀 늦게 하고 싶은데."
나와 친구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놨다.
"그러는 넌 언제 하고 싶은데?"
친구의 반문에 친구 동생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는 하는데..."
이거였구나. 친구 동생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었지, 20대 후반 남자 둘의 결혼에 대한 청사진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의도를 파악한 이상 우리는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친구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판단을 위한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몇 살이랬지?"
"88년 생이요."
"아 그럼 슬슬 결혼 생각하겠네. 얼마나 만났는데?"
"2년? 조금 넘었어요."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전문가는 결혼을 위해서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야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뭐하는 사람인데?"
친구 동생의 순조롭던 대답이 순간 멈칫했다. 오른손을 입에다 가져간 후 몇 번의 헛기침 끝에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핸드폰.. 팔아요."
순간 내 친구와 나는 '아'하는 나직한 탄식을 뱉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 둘 다 배경보다는 사람을, 외면보다는 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가 사랑한다고 하며 2년이 넘게 만난 남자친구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동생의 태도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확신을 주지 못한 그 남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뭐 직업이야, 뭘 해서든 돈 벌고 잘 살면 되지. 나중에는 뭐하고 싶대?"
이번에도 친구 동생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계획을 물어봤는데... 자기도 잘 모르겠대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신음이 비져 나왔다.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인데, 미래에 대한 한 줌의 계획이 없는 사람과 도대체 어떻게 평생을 살아가겠는가.
다른 이야기.
이번엔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언니 중에 ㅇㅇ언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ㅇㅇ언니라는 사람은 올해 35살로, 우리와 나이 차이가 꽤 났다. 그래도 젊게 사는 주의라 자신과 잘 어울려 다니면서 논단다. 집도 꽤 괜찮아서 그 나이 되도록 고정적인 수입 없이도 고급 오피스텔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고 했다.
"그래서 그 언니가 왜?"
나는 '그냥 철없는 부잣집 딸 아니야?'라는 거북한 생각이 들어 중간에 말 허리를 자르고 물었다.
"언니 보니깐, 결혼에도 다 때가 있는 것 같아. 언니가 얼마 전에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가 헤어졌거든. 근데 이유를 보니까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고 헤어졌더라고. 그래서 든 생각인데 남녀가 서른이 훌쩍 넘어서까지 혼자 지내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굳이 누군가를 배려할 생각이 안 드는 것 같더라."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2번의 긴 연애 끝에 지금은 솔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잠깐 휴식이 필요해'라고 생각한 것이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2번의 긴 연애를 치열하게 치르고 난 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1년이 넘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연애관의 정립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것을 바쳤다. '바쳤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때의 나는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공부나 일이 끝나면 남는 시간에는 무조건 여자친구를 0순위로 두었고, 기념일이나 생일 때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해서 비싼 선물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지고 나서는 '이렇게 다 퍼주고 해도 남는 것은 없구나'하는 생각에 연애에 대한 일종의 허무주의가 생겼다. 그렇게 1년을 혼자 즐겼다. 애초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잘하는 성격이라,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편했다. 매번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됐고, 카페에 있다가 지루하면 나와서 다른 곳에 가면 됐다. 영화를 보고 서로 어떤 것을 느꼈느니 따위의 의견 충돌 없이 감동을 혼자 곱씹을 수 있었고, 잠이 안 오는 새벽이면 훌쩍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연애에 대해 이성적인 사고를 갖게 됐다. 주변 사람들의 연애를 보며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해하면서도 '저게 옳은 게 아닌데'하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 연애를 할 경우
1. 서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2. 그러므로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면 안 된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라는 혼자만의 규칙을 세워놓고 연애에 관한 폐쇄적으로 지내던 나를 깨우쳐 준 것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영화 '500일의 썸머'였다.
그동안의 연애에서 나는 클로이를 이해 못하는 남자였고, 썸머의 결혼을 납득할 수 없는 톰이었다. 이제까지의 연애에서 내가 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 나의 행동은 무조건적으로 '준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상대방에 대한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나도 이만큼 했으니 너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라는 것이 기저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그토록 작은 일에 서운해하고 아기처럼 굴었는지도 모른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이라는 노랫말처럼, '다 퍼주되, 퍼준 만큼 받을래'식의 연애관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앞선 두 번의 경험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예전과는 달라야 하고, 달라져야 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제자리다. 어쩌면 예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오로지 다 퍼주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다 퍼주는 '나'를 경계해야 하고, 상대방이 내가 정성을 다해서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애로 사항은 위의 모든 사항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무 살, 첫사랑을 시작할 때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직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나이가 하나 둘 들면서부터 그런 사랑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만 는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 사람이 괜찮은가'부터 생각한다.
스무 살,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못 느꼈지만 친한 친구에게 시간표를 알아내 괜스레 강의실 앞을 서성거리곤 했다. 길을 가다 혹시라도 마주칠까 봐 몇 번씩 인사말을 되뇌고는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기도 했다.
친구 동생의 남자친구, 친구의 아는 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까닭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못한 겁쟁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서 일지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인 '결혼'만을 원하는 자신이 말이다.
스무 살, 그때의 그 풋풋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첫사랑의 뜨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