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덕후야~”
뒤통수에 느껴지는 통증에 뒤를 돌아봤다. 김민수였다. 쭉 째진 비열한 눈으로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다 그렸어?”
“아.. 아직..”
“아니, 하.”
김민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부탁한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직이야? 아니 친구가 이렇게 ‘부탁’ 하잖아?”
김민수가 내 뒤통수를 툭툭 치며 언성을 높였다. 말이 ‘부탁’이지 이건 폭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쓰레기 같은 놈.
“내일까지 최대한 해볼게.”
나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손바닥의 접촉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잘하자, 응?”
“야, 왜 또 덕후 괴롭히고 그래? 진짜 저질이야.”
고개를 들어보니 최선화와 옆에 친구(이름 까먹음)와 함께 김민수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뭘 괴롭혀~ 친구끼리 부탁한 거지. 왜 난리?”
김민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탁은 무슨 진짜 못됐어 그만 괴롭혀 애 좀!”
“안 괴롭혔다니까? 뭐야, 감싸주기야? 내 편은 어디 없나 이거 원 서러워서.”
김민수가 우는 표정을 지으며 최선화를 놀렸다. 그러자 최선화 옆에 있던 ㅇㅇ도 최선화의 어깨를 치며 맞장구쳤다.
“어머 선화야. 벌써부터 남편 챙기기야? 현모양처네 현모양처야.”
ㅇㅇ의 놀리는 말에 김민수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최선화는 ㅇㅇ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매점이나 가자고 보챘다. 그런 둘의 뒤를 따라 김민수도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그 와중에도 고개만 뒤로 돌려 ‘내일까지 잊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는 셋의 뒷모습을 좇으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 가에 대해 생각했다. 어째서 소위 일진이라는 그룹에 낙인이 찍혀서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나.
악의 고리가 시작된 것은 15살 봄이었다. 배꼽에서 다섯 치 아래에 거뭇거뭇한 털이 수풀을 이루기 시작하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겨드랑이 아래쪽에도 이미 생겨버린 검은 숲을 없앨지 말 지 고민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은 처음 접하는 성적인 세계에 부끄러워했다.
가정 시간에 2차 성징이니 뭐니 하면서 배우는 것들은 단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퀴즈일 뿐 소년들의 궁금증을 전혀 해소시켜주지 않았다. 몇몇 빠른 아이들은 자위를 시작했고, 자신의 성기 크기와 옆 자리에 앉은 여자애의 가슴이 어느 정도 부풀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대부분 한 살이나 두 살 터울의 형이 있는 애들이었다.
김민수도 그런 케이스였다. 두 살 위의 형이 옆 동네 남자 중학교를 다녔는데,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 학교의 짱이라는 사실과 싸움에 관한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었다.
“야 민규 형 이번에 오석재랑 떴다며?”
“오석재 눈 터졌다는데 진짜야?”
소년들은 성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싸움, 힘, 파괴 같은 원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있어 싸움 잘하는 형을 둔 김민수는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고 자연스레 아이들을 이끄는 그룹에 속하게 됐다.
“그렇지, 사실 민규형이 이 동네 거의 잡았지.”
김민수는 형의 업적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이광철에게도 김민수는 ‘꽝철아!’라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이광철은 그런 김민수를 학기초에는 못마땅해했으나 ‘친구끼리 왜 그러냐’는 김민수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수긍했다. 그만큼 김민수의 형 김민규의 존재감은 컸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싸움 잘하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백그라운드이자 권력에의 급행열차 티켓 같은 것이었다.
김민수가 처음부터 나를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주변 애들에게 깐죽대거나 으스대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타깃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그런 저질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한 명씩 슬쩍슬쩍 건드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김민수가 건드릴 때마다 아이들은 불쾌해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는 반 1등의 손에서 볼펜을 뺏어 약 올린다거나 이유 없이 만만한 애의 뒤통수를 딱 소리 나게 후려갈긴다거나 매점에서 사 온 빵을 한 입만 달라고 한 뒤 반 넘게 입 안에 욱여넣는 그런 것들이 김민수가 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김민수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우리들의 반응이었다. 나 자신의 불쾌감을 표출하기에는 김민수가 가진 배경과 권력이 너무도 거대해 보였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는 별개로 권력의 중심부에 서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김민수를 좋아했다. 김민수네 집은 퍽 잘살았는데, 그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용돈을 많이 받았다. 김민수는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 날은 체육시간이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이 체육시간이 되면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축구를 하는 무리, 농구를 하는 무리, 그리고 스탠드에 앉아 수다를 떨며 어서 체육시간이 끝나길 바라는 무리.
“시작하자 빨리! 시간 없어!”
“뭐야 덕후 우리 편이야? 이럼 우리가 너무 쫄리는데.”
“아 뭐가 쫄려! 빨리 시작해 시작!”
나를 상대편 쪽에 갖다 놓은 김민수는 어서 시작하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 편 애들은 내가 마지막 선수로 참가하게 된 것이 영 못마땅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김민수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경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 15분까지 우리 팀은 처음의 우려와는 다르게 김민수의 팀과 팽팽한 접전을 이뤘다. 선제골은 시작하자마자 김민수가 화려한 드리블로 넣었으나 우리 팀 역시 끈질긴 공격을 거듭해 동점골을 욱여넣을 수 있었다. 예상과 다른 경기 흐름에 시간이 갈수록 우리 팀 얼굴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반대로 김민수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야 이길 수 있겠다! 조금만 더 집중해!”
이광철이 아이들을 독려했다. 이광철은 생각보다 구기종목에 재능이 없었다. 다만 덩치와는 다르게 빠른 순발력과 큰 손은 골키퍼에 적합했다. 김민수와 다른 축구를 잘하는 애들의 공격에도 실점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은 이광철이 키퍼를 보고 있던 탓이 컸다.
“좀 패스해 무조건! 내가 다 뚫어서 넣을 테니까!”
반대편에서 김민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르게 조급한 어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후반 15분만 뛰면 된다는 생각에 누가 이기던지 빨리 경기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정오의 햇살이 따사롭게 정수리를 덥혔지만 몸에는 오한이 일어 소름이 오도도 일어났다. 나는 이따금씩 손바닥으로 일어난 소름을 빗질하듯이 툭툭 털어내야 했다.
“자! 후반 시작!”
후반전이 시작하자 김민수 팀과 우리 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열하게 볼 경합을 했다. 나를 제외한 우리 팀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김민수 팀의 공격을 저지했다. 불이 붙은 팀 분위기에 나 역시 가슴이 뜨거워졌지만 마음뿐이었다. 살이 제대로 걸린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쑤셨고 아까부터 지끈지끈 머리를 괴롭히던 두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 비었다, 여기!”
어느새 내 바로 앞까지 침투한 김민수가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내 앞의 수비수를 맡은 아이가 나를 쳐다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유재환이 뻥-소리 나게 찬 공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나와 김민수의 사이로 날아들고 있었다.
“빨리! 막아!”
뒤에서 이광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머리가 망설인 것이 아니라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막아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표는 이광철의 목소리에 의해 입력이 되었지만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육체는 움직임을 거부했다.
“뭐해! 얼른 막아!”
뒤에서 이광철이 한 번 더 소리쳤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삐그덕 대는 몸을 이끌고 김민수의 앞을 막아섰다. 멀리서 날아온 공이 김민수를 지나쳐 내 뒤통수 쪽으로 떨어져 바닥에 튕기고는 이광철 쪽으로 굴러갔다. 김민수는 나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팔로 나를 밀치고는 공을 향해 뛰어갔다. 김민수의 손길에 옆으로 치워진 나는 잠시 주춤하다가 뛰는 척이라도 할 요량으로 김민수의 뒤를 쫓았다. 뛰면서도 ‘이건 못 막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광철이 골대에서 나올까 말까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못 막아.’
김민수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공을 잡고는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공을 천천히 굴리며 헛다리를 짚으며 자신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스탠드 한 구석을 흘끗흘끗 보는 것이었다. 뒤쫓아가던 나는 도대체 김민수가 무엇을 의식하는지 궁금했다. 김민수의 눈길이 한 번 더 스탠드를 쳐다보았을 때 시선을 쫓아간 나는 김민수가 의식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최선화였다.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에 으슬으슬 오한까지 드는 몸으로 축구를 한 것이 고작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김민수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에 화도 났지만 그 대상이 하필이면 최선화라는 사실에 가슴 한 켠이 아렸다.
최선화는 김민수와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 팀의 누군가가 ‘안돼! 먹히겠어!’라고 소리치자 스탠드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순간 우리 골대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최선화도 친구와의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봤다. 김민수와 나, 둘 중에 누구를 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민수와 나는 최선화가 자신을 쳐다보았다고 생각했다. 김민수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 이후에 행동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최선화가 이쪽을 본 순간 김민수는 신이 나서 골대 쪽으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나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씨발!’
나는 속으로 욕하면서 김민수의 뒤통수를 쫓았다. 한껏 궤도의 오른 달리기였다. 지금 따라잡으려고 해 봤자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민수를 쫓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속의 화가 머리카락 한올까지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발바닥이 운동장 바닥을 박찰 때마다 머리가 쿵쿵 울렸지만 그럴수록 김민수의 뒤통수를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뛰어 빨리!”
이광철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다리에 힘을 더 주어봤지만 속도가 ㅂ더 빨라지지는 않았다. 김민수도 전반전에 무리를 한 탓인지 아까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민수와 나 사이에 있는 2m는 영영 좁혀지지 않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꼭 그만큼만 멀어지는, 그런 거리 같았다. 그 거리가 꼭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나누는 기준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와 김민수의 관계처럼 혹은 최선화와 나의 관계처럼.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단지 남들보다 한 가지가, 혹은 그 이상이 뛰어나다고 해서 우쭐거리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따위 용납할 수 없었다. ‘사람인 이상,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격언 아닌 격언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좁혀지지 않는 거리, 옷자락이라도 닿기 위해 나는 두 다리로 지면을 힘껏 박찼다.
“어, 어!”
내가 설마 몸을 날릴 줄은 생각도 못한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당황한 목소리를 뱉었다. 고작 2미터 남짓한 거리를 위해 나는 몸을 던졌다. 도약하기 위해 바닥을 박차는 시간은 짧았고,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하지만 멀리뛰기에서 매번 낙제점을 받는 내가 뛰어넘기에는 2미터라는 거리조차 멀었다. 김민수의 등이 아까보다는 훨씬 가까웠지만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멀리뛰기 수행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힘껀 손을 뻗었다.
“어.. 어!”
아까보다 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친’이라는 단어도 얼핏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몸을 날리는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뻗은 손은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간신히 김민수의 등에 닿았다. 하지만 닿았을 뿐 김민수의 움직임을 멈추지는 못했다. 손가락 끝이 김민수의 등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검지와 중지 손가락이 걸리는 고리를 발견했다. 나는 그 고리를 힘껏 움켜쥐었고 김민수는 앞으로 나가려는 몸을 억지로 멈춰 세워야만 했다.
내가 힘껏 움켜쥔 고리는 김민수 바지에 달려 있는 벨트 고리였다. 어째서 추리닝처럼 보이는 바지에 그런 고리가 달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고리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와 김민수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몸을 날려 잡은 그 고리는 바지와 함께 내 몸과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바지는 팬티까지 함께 끌고 내려왔다. 사춘기 소년의 자그마한 성기가 거뭇한 숲에 미쳐 숨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초등학교 때 한창 미확인 비행물체 UFO에 대한 괴담이 떠돈 적이 있었다. 당시 합성사진이다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외계인을 잡아서 연구하고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들이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큰 화제가 됐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없으면서도 유행을 끈 이야기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정적이 흐르는 순간 ‘UFO다!’를 외치면 UFO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유행할 때 아이들은 아침부터 시작해서 6교시가 끝나는 시간까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정적에 오감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정적은 하루에도 세네 번씩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모든 감각을 정적에 맞추고 잔뜩 움츠려 기다리고 있는데도 막상 정적이 찾아왔을 때 ‘UFO다!’를 외치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정적이 지나간 후 5분쯤 돼서야 ‘아 맞다!’하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가 큰 후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정적이나 UFO 따위보다는 근육, 힘 같은 마초적인 것들과 성인 여성의 육체, 또래 여자아이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 같은 것에 안테나를 세웠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만약 ‘UFO다!’를 외치면 아마 UFO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수의 성기가 수줍게 세상에 인사를 하러 나온 순간 시끄럽던 운동장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헐떡이는 숨소리조차 그 고요를 깨트리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생각하니 눈 앞이 아득해졌다. 운동장에 내려앉은 고요가 무겁게 내 몸을 짓눌렀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UFO다!’를 외쳐 이 무거운 적막을 깨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하지만 고요를 깨트린 것은 이름 모를 아무개가 외친 ‘UFO’가 아닌 김민수였다. 김민수는 허리를 숙여 발목에 걸린 바지를 잡아채 허리 끝까지 잽싸게 올렸다. 바지 고리에 달린 내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튕겨져 나갔다. 바지를 올려 앞의 고무줄까지 후다닥 맨 김민수는 그대로 몸을 뒤로 올려 엎어져 있던 나의 얼굴을 발로 찼다.
순간 눈 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코 밑으로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걸 보니 코피가 터진 것 같았다. 흥분한 김민수가 주먹을 말아 쥐고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김민수의 뒤로 아이들이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수의 주먹이 훨씬 빨랐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통증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