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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01. 2020

11.

“오랜만이네?”


김필수가 선화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옆에 앉아도 될까?”


“응, 뭘 허락까지 맡고 그래.”


“하하, 원래 여자 옆에 앉을 때는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김필수가 선화 옆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필수의 능청스러움에 처음에는 경계하던 선화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글쎄. 아마도 엄마?”


김필수가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는 저건 절대 김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 김필수의 얼굴에서 더욱 부티가 느껴졌다. 뽀얀 피부에 5:5로 세련된 가르마를 탄 그에 얼굴에서는 예전의 곰보 선장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와, 필수 선수네. 한 잔 할래?”


“선수는 아니지만 한 잔은 받을게.”


김필수가 선화의 말을 능숙하게 받으며 잔을 받아 들었다. 둘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힌 뒤 단숨에 잔을 비웠다. 


“순덕이도 한 잔 할래?”


김필수가 소주병 입구를 내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나는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굳이 내색하기는 분위기가 그래서 됐다고 이야기했다. 옆에서 선화가 순덕이는 아까 술 많이 마셨어라고 거들었는데 그 말이 마치 술 마실 거 아니면 저리 꺼져-라는 소리로 꼬여서 들렸다. 나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자 김민수 패거리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김필수 때문에 선화와의 자리를 뺏긴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밖에 나와 그들을 보니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얼굴을 구겼다. 그대로 뒤로 돌아 건물 뒤편으로 가려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내 발을 붙잡았다. 


“야, 필수 그 새끼 왜 저렇게 신수가 훤해졌냐 아예 못 알아보겠던데?”


“입고 있는 것도 다 명품이야! 시계도 롤렉스고. 아니 쟤 뭔데?”


“거봐, 내가 말했잖아. 저 새끼 엄청 잘 나간다고.”


나는 그대로 입구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다행히 술도 취했겠다,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빠져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누가 곰보 선장이 저렇게 잘 나간다고 이야기하면 그렇게 쉽게 믿냐?”


“씨바 곰보 선장, 오랜만에 듣네 진짜.”


이재민과 유재환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김민수가 정색을 하고 조용히 하라며 입에 검지를 갖다 댔다. 


“야야, 들릴라 조용히 해!”


그 모습에 이재민과 유재환은 별 이상한 사람 보듯 김민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곰보 선장이 곰보 선장이지 돈 좀 번다고 아니냐?”

김민수는 유재환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쟤, 너네 생각보다 거물이야. 우리 아빠도 굽신거리면서 이사님, 이사님 한다고.”


“뭐? 너희 아빠가?”


김민수의 말에 이재민과 유재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나도 어렴풋이 김민수의 아버지가 거의 조폭이나 다름없는 생김새와 행동으로 유명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김민수는 유재환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돈 앞에는 장사 없지. 우린 쟤네 회사의 하청의 하청이니까.”


“그럼 곰보가 다니는 데가 본청의 본청이야? 와 새끼 진짜 출세했네. 근데, 그래도 그렇지 너네 회사도 돈 쓸어 담는데 그렇게 까지 굽신거려야 돼?”


“씨바 곰보라고 하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어 예민하게 굴기는.”


“아니, 하. 자 들어봐. 우리 회사는 년 단위 계약이란 말이야. 그래서 계약 시즌 되면 난리 나 아주. 필수네 회사에서 과장급이 파견 나오지? 진짜 난리 난다니까. 사단장 방문급이야 거의.”


“아니 그 정도야?”


“그래. 하 새끼들. 너네 편하게 돈 버는 줄 알아 진짜. 쟤 한마디에 우리 회사 사람들 몇십 명 모가지가 그냥 날아간다니까.”


“야 자영업자 서러워서 살겠냐. 나도 힘들게 살거든? 근데 곰.. 필수 쟤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된 건데?”


이재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김민수에게 물었다. 


“저 새끼가 그래도 대가리가 좋았잖아 어렸을 때도. H사에서 하는 창업 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나 봐. 그래서 H사에 특전으로 바로 입사했대. 근데 씨바 웃긴 게 뭔지 아냐? 창업 콘테스트 1등부터 3등 수상식에 그룹사 회장도 왔나 봐. 거기서 김필수를 보고는 자기 큰아들 닮았다고 붙잡고 엉엉 울었다는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회장이 이제 팔순쯤 되는데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나 봐. 회장 큰 아들이 이십 대 초반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나 봐.  그때 회장이 사업 한창 키울 때라서 큰 아들이 우울증 있는데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밖으로만 돌아다닌 게 한이었나 봐. 그 날 김필수 붙잡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주변 사람들도 당황해서 말리지도 못했대.”


김민수가 말을 멈추더니 담배 있냐고 이재민에게 물었다. 이재민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가치를 김민수에게 건네며 불을 붙여줬다. 김민수는 크게 한 모금 빨아드리더니 후- 하며 연기를 뱉었다. 


“그러더니 김필수를 무조건 회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인재로 키워야 된다고 난리를 쳤나 봐. 비서진들이랑 그룹사 사장들도 어디 근본도 없는 애를 데려다가 키우냐고 반발했는데, 회장이 그럼 니들 다 갈아엎는다고 노발대발해서 어쩔 수가 없었대. 오락가락해도 아직 최대주주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나 봐. 그래서 뭐, 입사하고 2년 만에 초고속 승진해서 이사가 된 거지.”


“아니, 말이 안 된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이야기네.”


“씨바, 말이 안 되지 아예. 더 웃긴 거는 저 새끼 이력 만들어줄라고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맡겼는데 이게 말이 몰아주기지 사실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나 봐. 위에서도 이 새끼가 프로젝트 몇 번 말아먹으면 능력 없어서 안된다고 회장한테 말할 요량이었던 거지. 근데 이 새끼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걸 다 대박을 쳐버렸네? 그래서 위에서도 어쩔 수 없이 다들 쉬쉬하며 인정하는 분위기래. 오히려 회장 라인이라고 김필수한테 줄 대는 사장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야… 곰보 완전 다르게 보인다…”


이재민이 또다시 곰보라고 김필수를 부르자 김민수가 째려봤다. 이재민은 아차 싶었는지 얼른 뒤를 돌아 가게 안을 살폈다. 


“야 못 들었어 못 들었어 걱정 마. 그렇게 잘 나가니까 저렇게 신수도 훤해지고 아주 행동거지가 기품이 넘치시는구먼?”


이재민이 비꼬며 말하자 김민수가 다시 한번 가게 안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야. 진짜 너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아, 우리가 어디 가서 뭘 말한다 그래. 빨리 말해봐.”


이재민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김민수를 재촉했다. 


“아니 미친놈아. 진짜 이건 퍼지면 안 되는 거야.”


김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자 이재민과 유재환은 절대 말 안 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김민수는 고개를 돌려 가게를 한 번 쓱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레 작아진 김민수의 목소리에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곧바로 몸을 돌려 바람이나 쐬러 가기에는 김필수에 대한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나는 슬며시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만한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약간 남아 있는 취기가 용기를 북돋아줬다. 


“…. 했다니까.”


“이게 진짜야?”


"대박이지 않냐?”


김민수의 말에 이재민과 유재환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김민수가 기겁을 하며 조용히 하라고 낮게 소리쳤다. 


“아니, 그러니까 김필수가 회장 큰 아들이랑 일부러 비슷하게 성형을 했다는 거야?”


“아 그렇다니까.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아빠한테 들은 얘기야. 아빠도 H사 임원한테 들었대. 그쪽에서도 쉬쉬하지만 난리인가 봐.”


“보통 미친놈이 아니네… 아니 큰 아들 얼굴은 대체 어떻게 알고?”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졸업앨범이나 이런 걸 어디서 구해가지고 봤겠지. 더 소름 돋는 건 뭔지 아냐?”


“뭔데?”


“얼마 전에는 회장이랑 독대하는 자리에서 ‘아빠’라고 불렀다는 거야. 회장이 놀래니까 실수인 척 ‘아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아빠랑 통화하다 오는 바람에. 회장님이 아빠처럼 편하게 느껴졌나 봅니다’라고 했다는 거야.”


“와 이게 진짜야? 그래서?”


“노망난 노인네가 죽은 아들이랑 똑 닮은 애가 와서 ‘아빠!’ 이 지랄하는데 어쩌겠냐? 그 자리에서 또 대성통곡해서 비서진들 총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대더라. 그러더니 회장이 김필수를 꼭 껴앉으면서 고맙다고 했대.”


“미친놈이네…”


“보통 미친놈이 아니지. 이 정도면 사이코패스급이야. 야 그래도 너네는 쟤랑 만날 일이 없잖아. 나는 쟤 처음 봤을 때 어땠는 줄 아냐? 어후.”


 “왜 뭐 어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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