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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01. 2020

10.

김필수는 선화와 다른 아이들의 말처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물론 세월이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지만 삭풍에 깎인 돌이 원형을 잃지 않는 것처럼 예전의 체취랄까 중학교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록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나와 함께 한 세대를 지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어떤 친근감이었다. 


하지만 필수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김필수와 나는 김민수에게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김민수가 괴롭히는 애들 중에서도 우리 둘은 특별한 존재였다. 내가 김민수의 바지를 벗긴 이후로 김민수는 나를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쉬는 시간마다 갖가지 무술 연습을 한다며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레슬링 놀이를 하는 날에는 바닥에 쓸린 교복에 묻은 먼지가 걸을 때마다 떨어져 나왔고 킥복싱 놀이를 하는 날에는 맞은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명백히 ‘놀이’였기 때문에 그 일을 가지고 학교폭력이니 뭐니 신고하는 애들은 없었다. 물론 그것을 곧이곧대로 ‘놀이'라고 보는 애들은 없었겠지만 눈이 돌아간 김민수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배짱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이따금 ‘놀이’가 너무 심해지면 광철이가 나서서 말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김필수는 육체적으로는 전혀 힘들 것이 없었다. 김민수 패거리들은 김필수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장난으로라도 툭툭 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들은 김필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고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돈을 갈취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필수가 돈을 뺏기게 된 것은 김민수 패거리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필수는 나처럼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외로움을 많이 타는 류였다. 내성적이어서 남에게 말을 잘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도 누군가와 친해지길 바라는 모순적인 성격이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김필수가 김민수 패거리에게 타깃이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필수의 가장 큰 문제는 사춘기 소년 특유의 일탈을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필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학기초에 김민수 패거리와 친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민수 패거리는 그런 김필수를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한 듯했다. 겉으로 딱 보기에 김필수는 김민수 패거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김필수는 170이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키에 웬만한 여자보다 손목이 얇을 정도로 깡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눈도 굉장히 나빠서 두꺼운 안경알이 달린 뿔테 안경을 썼기 때문에 인상이 더욱 멍청해 보였다. 게다가 왕성한 호르몬 작용인지는 몰라도 얼굴에 여드름이 한가득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할 정도였다. 


김민수 패거리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도대체 이딴 자식이 왜 자기들 무리와 어울리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던 것 같았다. 무시도 해보고 무섭게 분위기도 잡아보았지만 김필수는 끈질기게 김민수 패거리 근처를 맴돌았다. 김민수 패거리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달할 때쯤, 김필수가 김민수 패거리와 잠시나마 함께 놀게 된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은 이재민이었다. 이재민은 나이와는 다르게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았는데, 누구네 집이 얼마고 누구 아빠가 얼마 벌고 하는 소식들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날도 김필수가 점심시간에 김민수 패거리 옆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 날따라 날씨는 덥고 습해서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한 하루였다. 김민수 패거리도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 요량으로 서로의 주머니를 탈탈 털었지만 모인 돈은 고작 2천 원 정도였다. 더운 날씨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도 못 먹으니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년들의 짜증은 극도로 높아졌고, 누군가 조그만 건더기만 쥐어준다면 펑하고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이재민은 옆을 돌고 있던 김필수를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야 필수야.”


“으, 응?”


“500원 있냐?”


김민수 패거리의 시선이 김필수에게 몰렸다. 


“어.. 500원은 없는데.”


김필수의 대답에 김민수 패거리는 다시 흥미를 잃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재민도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필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 김필수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토록 귀찮게 해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패거리들이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500원은 없는데 뭐 사고 거스르면 될 것 같아!”


김필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재민이 김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김필수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을 보고는 씩 웃으며 김필수의 지갑을 낚아챘다. 


“오, 이거 끌레드인데 지갑 좋은 거 쓴다? 와, 이 새끼 돈 졸라 많네.”


이재민이 김필수의 지갑에서 5만 원짜리 2장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헐, 이거 연회비 250짜리 카든데? 야 필수야 너희 집 부자구나!”


이재민이 김필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김필수는 멋쩍게 웃으며 ‘부자는 아니고..’라고 말했지만 김필수를 쳐다보는 김민수 패거리의 눈빛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김필수는 그때부터 김민수 패거리와 어울리게 됐다. 말이 어울리는 거지 사실상 물주나 다름없는 듯했다. 항상 점심시간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매점에 가야 했고 방과 후면 학원도 빼먹으면서까지 피시방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또 종종 김민수 패거리는 한 명씩 은밀하게 김필수를 끌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컨테이너 뒤쪽으로 데리고 들어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한 다음날이면 꼭 각자 새로 산 운동화며 옷이며 자랑하기 바빴기 때문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음을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김필수만 손해보는 거래라는 것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어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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