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ka Nov 01. 2020

9.

“이게 누구야?”


“완전 멋있어졌다 못 알아보겠는데?”


몇몇 여자애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남자애들도 놀란 눈치였다. 나는 무슨 소란인가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화도 나를 따라 가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가게 입구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중학교 동창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지 몰라 기억을 더듬었다. 얼굴이 낯이 익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서 선화가 아 하는 탄식과 함께 ‘필수!’라고 말했다. 


5:5로 얌전하게 가르마를 타고 갈색 코트를 입은 김필수는 중학교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얼굴도 더 갸름해졌고 전체적으로 마른 몸이었지만 궁핍해 보이기보다는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피부도 웬만한 여자보다 하얗고 깨끗해서 ‘곰보 선장’이라는 예전의 별명이 과연 김필수를 두고 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안녕, 오랜만이야 얘들아.”


김필수가 한쪽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난처해하는 듯하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다들 김필수에게 어떻게 지냈냐는 둥 신수가 훤해졌다는 둥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러자 김민수가 나서서 아이들을 제재했다. 


“자자, 묵은 회포는 필수 술 한 잔 따라주면서 풀자!”


김민수의 한마디에 다들 쪼르르 테이블로 돌아가 자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시선은 김필수에게로 쏠려 있었다. 동창들이 김필수에게 보고 싶었다며 갖가지 근황을 묻는 것을 보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중학교 때 관심도 없었던 이들이 김필수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내는 것은 지난날의 추억이나 곱씹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 찌질했던 김필수가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도련님으로 변했는지가 궁금한 것이었다. 


김필수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이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하나씩 대답했다. 아이들은 김필수의 대답에 와- 하면서도 찝찝해하는 눈치였다. 김필수가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서 먹었다는 둥 의례적인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였으면 그런 김필수의 대답이 못마땅한 누군가가 나서서 ‘그게 무슨 엉터리 같은 소리야 이 곰보 선장 자식이 건방지게!’라며 뒤통수를 후려갈겼겠지만 술이 거나하게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었고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필수에게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코트와 니트, 그리고 팔목에 감긴 은색의 롤렉스, 당황해도 움츠러들지 않고 대답하는 여유가 김필수가 가진 부와 사회적 위치를 알게 했다. 부자들만 가진 특유의 여유가 김필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필수의 등장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가게는 술이 몇 순배 돌자 자연스럽게 진정되었다. 몇몇 여자애들은 김필수에 대해 여전히 집착하며 어디 사는지, 차는 무엇인지에 대해 캐물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김필수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선화는 김필수의 등장에 잠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으나 곧 술병을 들어 자기 잔에 술을 따랐다. 내가 선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선화는 웃으며 내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잔이 비웠으면 네가 챙겨줬어야지!”


“미, 미안 잠깐 정신이 팔려서.”


“왜, 너도 필수가 어떻게 저렇게 됐는지 궁금하니?”


선화가 놀리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김필수 쪽을 쳐다보았다. 김필수는 여전히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흠 그래? 난 궁금한데.”


“어?”


내가 벙찐 표정을 짓자 선화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잖아! 사람이 갑자기 확 바뀌었으니! 아무리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어쩜 저렇게 변할 수 있어?”


나는 여태껏 선화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부,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환장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선화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보인 호의와 눈빛이 그토록 순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화가 필수의 변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곧 진한 실망감을 느꼈다.

선화는 내 실망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다가 술을 따라 마시기를 반복했다. 나는 처음에는 선화가 자작을 하지 못하도록 술을 따라주었으나 선화가 고민하는 대상이 김필수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나빠져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선화는 내가 술을 따라주든 말든 상관없이 알아서 홀짝홀짝 술잔을 비웠다. 나는 기분이 나빠 의도적으로 선화의 시선을 피해 딴 곳을 보면서도 곁눈질로 선화를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선화는 술이 꽤 센 편인 듯했다. 아까 바에서도 꽤 마신 것이 분명한데 이곳에서만 벌써 3병째 소주병을 비우고 있었다. 나와 나눠마신 것을 빼도 2병은 훌쩍 넘긴 양이었다. 나는 그만 마시라고 말해야 되나 고민하던 차에 선화의 눈을 보고는 그러한 생각을 접었다. 선화는 김필수 쪽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김필수를 쳐다보던 선화는 술잔에 술을 채우고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는 혼잣말을 하고는 술을 삼켰다. 


나는 김필수에 대해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물론 내가 선화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선화의 말대로 10년이나 전의 일이다. 졸업식에 서럽게 우는 아이가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듯 내가 선화를 다시 만났다고 해서 선화에 대한 사춘기 소년의 감정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대 사람으로서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상대의 관심이 나에게서 다른 쪽으로 옮겨졌을 때 오는 상실감이 나로 하여금 김필수에 대해 질투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