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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01. 2020

16.

선화에게 연락이 온 것은 만 하루가 지나서였다. 지난날 작업으로 인해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오후 세시쯔음 이부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눈을 뜨게 했다. 나는 뻑뻑한 눈꺼풀을 몇 번 깜빡여 힘겹게 뜨고는 침대 밑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미안! 어제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답장을 못했어. 괜찮으면 이번 주말에 저녁이나 먹을까?'


나는 무겁게 느껴지던 눈꺼풀이 무색하게 눈을 크게 뜨고 문자를 읽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선화의 말을 곱씹었다. 수학여행 전날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거림이 가슴을 두드렸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 커튼을 힘껏 젖혔다. 날카로운 햇빛이 눈을 질끈 감게 했지만 얼굴에 느껴지는 따스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반 통을 비우고 나머지 반은 도로 넣었다. 시원한 물이 몸 안을 적시자 비로소 현실이 인식됐다. 선화와 단 둘이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주말에는 아무 시간이나 상관없다고 답장을 보낸 뒤 곧바로 인터넷에서 약속 장소로 괜찮은 곳이 있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


선화를 만나기로 한 토요일 저녁까지 나는 들뜬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할 필요가 있었다. 지루하게 끝낸 작업물을 의뢰인에게 다시 연락해서 굳이 다시 봐주겠다고 이야기한 나는 고칠 필요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듬어가며 내 의식에서 선화를 밀어냈다. 이미 끝난 작업물이라 더 손볼 곳이 없다시피 했지만 나는 이런저런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다듬고 다듬어 일주일을 꽉 채웠다. 의뢰인은 뜻밖의 친절에 처음에는 고마워하는 듯싶다가도 일주일이나 작업을 더 진행하겠다고 하자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쳤다. 중간중간에 이제 괜찮으니 완성된 부분만 보내주시라, 우리가 나머지는 채워 넣겠다 하는 연락을 몇 번이나 했지만 나는 내가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마무리를 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작업물을 넘기기 하루 전 날에는 노골적으로 작업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혹시 페이를 더 드려야 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더 얹어주시면 감사하죠라고 대답했겠지만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이지 돈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온 몸이 붕 떠서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손에서 슬며시 놓아진 헬륨 풍선처럼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 종국에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펑- 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날아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오므린 발가락들이 피가 통하지 않아 새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선화와 약속한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선화를 만난다는 생각에 뒤척거리느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머리가 약간 멍한 것 빼고는 기분은 아주 좋았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주문한 니트와 코트를 위에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옷 태는 괜찮았지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옛날에 쓰다 안 쓰던 뿔테 안경을 찾아 썼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주말에 지하철은 유독 사람이 많았다. 일주일 중에서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기다란 열차칸에 몸을 꾸깃꾸깃 접어 넣은 채 평일에는 일터로 주말에는 놀이터로 실려가는 처지가 가축 같았다. 다들 코뚜레를 하고 멍에를 진 채 부자들에 손에서 놀아나는 노예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날 집에 돌아온 저녁 엄마에게 던진 이 물음은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야'라는 간단한 말로 나의 고민은 처리되었다. 하지만 인생이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주일에 5일을 일하고 2일 쉬는 삶이 종국에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인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죽음 이후에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따위의 것들을 스무 살 무렵의 나는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그때의 고민이 결국 나를 5일 일하고 2일 쉬는 삶의 트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지만 대신 나는 그들이 받는 월급이라는 일용할 양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매일 일정량, 혹은 그보다 덜 일해도 배급처럼 받는 월급의 소중함을 스무 살의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따끈한 감자나 혹은 옥수수 같은 배급을 위해 그나마 이틀이라도 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삶이 가축이랑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알아버린 탓에 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탓일 수도 있겠다. 결국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코에 커다란 걸쇠를 걸고 끌어줄 주인을 찾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푸쉬-익'


가득 찬 사람들이 버거운 듯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 문이 열렸다. 나는 10번 출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으나 뒤에서 불만 가득한 몸짓으로 나를 밀쳐대는 사람들 때문에 발을 바삐 놀려야 했다. 사람들은 이정표나 앞의 사람들은 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처박고 휴대폰을 보면서도 앞으로 잘만 나아갔다. 그 모습이 마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심해어 떼의 이동과도 같아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그들 흐름에 섞인 나는 넋 놓고 행진을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흐름에 몸을 맡기며 보이지 않는 선두를 따라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다. 처음에는 나를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로 여긴 듯 피해 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과 동류라고 판단한 탓인지 내가 흐름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고는 더 이상 나를 비켜가거나 추월해가지 않았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지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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