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는 왜 뿌린 거지?"
"아아, 그 향수 어디서 맡은 것 같지 않아? 네가 여기서 유일하게 기억하던 냄새. 우리 동창회 때 김민수가 신나게 떠들던 말 기억해? 일부러 싸구려 향수를 뿌리는 이야기."
기억을 더듬어보니 김민수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얼마간 마신 술과 김민수가 나를 윽박지르던 일, 선화와 대화한 일 등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김필수가 설명했다. 동창회 날 술에 취한 김민수가 잔뜩 으스대며 아이들에게 여자 꼬시는 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는데, 그 노하우가 바로 싸구려 남자 향수였다.
"냄새로 어, 이미지를 만드는 거라고 이미지를. 잘해주다가 나쁘게 구는 밀당은 기본이고, 나 같은 진짜 고수는 이런 디테일을 챙기는 거지. 알아? 싸구려 향수지만 이게 향이 뇌에 콕 박혀서 지워지지가 않는다고. 나중에는 남자 스킨 냄새만 맡아도 내 생각이 나는 거라니까?"
김민수는 그러면서 자신의 소매를 들어 주위 애들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김필수는 김민수에게 선화의 살인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앞으로 인생에서 김민수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마지막 피날레로 생각한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결말인 것 같다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뭐 사실 그 당시에는 의미 없는 행동이었어. 나중에 김 실장이 짚어줘서 알았지만 말이야. 김민수에게 뒤집어 씌우려면 그딴 싸구려 향수를 덕지덕지 뿌리는 일 자체는 굳이 안 해도 된다더군. 그냥 몇 가지 조작만 하면 됐는데 내가 그때 뭘 알았겠어? 사람을 죽인 게 처음인데 말이야. 대신 애꿎게 너만 향수 냄새로 내가 범인인 걸 알아버렸지 뭐야. 그렇지?"
김필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 앞으로 던졌다. 탁, 하는 꽤 큰 소리와 함께 떨어진 것은 내 휴대폰이었다.
"너를 범인으로 만들까 고민하기도 했어. 김 실장은 목격자가 있어도 최선화를 처리하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왠지 찝찝해서 말이야. 그런데 하루 동안 네 휴대폰을 보고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바뀌었어. 덕구야. 너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아직도 중학교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야? 이런 애 만나면 네 인생은 어쩌려고. 출발선이 다르면 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애를 잡아야 하지 않겠니?"
김필수가 진심으로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훈계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필수가 선화를 죽이고 그것을 김민수에게 뒤집어 씌우려다가 때마침 도착한 나를 기절시키고 다시 내가 여기로 돌아올 때를 기다려 김필수가 나타났다는 사실들이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지 알 수 없었다.
"최선화와 알콩달콩 연애라도 할 생각이었어? 정신 차려 덕구야. 쟤는 그냥 인생 꼬인 애야. 이렇게 말해도 너는 알아듣지 못하겠지? 그래서 너한테 기회를 주고 싶어 졌어."
"무슨 기회?"
"네가 과거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 그 지옥 같았던 중학생 권순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너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까지 못 벗어났잖아? 되려 김민수에게 맞을 뻔했지. 그러니까 나는 네게 기회를 주고 싶어. 김민수한테 같이 시달렸던 동료애랄까? 그러니까 결정 잘해봐.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네게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세상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네가 깨달았으면 하는 내 작은 배려야."
김필수는 나중에 혹시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넸다. 내가 받지 않자 김필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명함을 찔러 넣었다. 선화의 현관문을 나서며 김필수는 인생 바뀔 기회니까 잘 생각하라는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눈 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