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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Oct 30. 2022

1.

한 귀에 들어도 덩치가 큰 트럭에서나 나올법한 클락션 소리가 고함처럼 들렸다. '빠아아앙'하는 소리에 뒤이어 '어어! 어어!' 하는 다급한 외침도 들렸던 것 같다. 내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는 이미 눈 앞에 거대한 창살 같은 그릴이 놓여있었다.


"쾅!"


엄청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그 충격은 나를 가로등을 거의 눈 앞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띄워올렸다. 공중에 뜬 순간 주변의 소리가 사라졌다. 시끄럽게 들리던 클락션 소리도, '어어!'하고 황급히 외치던 소리도 사라진 채 나는 부유하고 있었다. 내 몸은 마치 깃털처럼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히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충격을 온 몸으로 받아낸 내 육체가 상황을 인지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내 눈에 모든 물체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졌다. 눈이 부시게 산란하는 가로등 불빛이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나타났고 나를 보고 입이 벌어진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검붉은 피들이 물감처럼 눈 앞에 뿌려졌다. 배경음악이라도 깔렸으면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장면이었다. 배우들이 공중에 날아오르는 액션씬을 찍을때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나 어느 순간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보이던 것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나는 '퍽'소리와 함께 딱딱한 아스팔트위에 처박혔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굉장한 아픔이 느껴져서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눈 앞에는 앞코가 까진 갈색 구두가 놓여 있었다. 나는 뺨과 옆구리에서 지독한 통증을 느끼며 서서히 눈이 감기는 것을 인지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때 나는 누가 근육을 강제로 찢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껴야했다. 시야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언뜻언뜻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와 무엇인가 타고 있는 느낌을 보니 병원으로 이송되어 온 것 같았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에 차라리 다시 의식을 잃고 싶었지만 쉽사리 되지 않았다. 너무 견디기 힘든,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온 몸을 뒤틀고 있었는지 여기저기 내 몸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울부짖었다. 내 목소리가 몸 밖으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절규했다. 신이 있다면 이 고통을 끝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였다. 죽음으로써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다면 기꺼이 감내할테니 평안속에 잠들게 해달라고 반복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내 고통을 끝낸 것은 신이 아니라 마취제였다. '더 투여해!'라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두번째로 의식을 잃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작동한 인지기능은 내가 다시 의식을 차렸음을 알려주었다.  내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와 갈비뼈가 많이 아팠는데 부러졌을까? 의학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두개골을 가르고 뇌 안에 찬 혈액을 빼낸 다음 봉합했을까? 혹,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나 다른 장기를 찌르지는 않았을까? 팔이나 다리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혼잡하게 떠다니는 것을 느끼며 눈을 뜨려고 했다. 그렇지만 눈꺼풀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시야는 여전히 캄캄했다. 피곤했던 일주일을 보내고 친구들과 밤새 놀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운 토요일처럼 열시간을 내리 잔 느낌이었다. 하루는 친구의 생일날 밤새 놀다 토요일 새벽 5시쯤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은 열 네시간을 잤다. 엄마가 보고는 사람이 그렇게 잘 수 있는거냐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해야 정상이었는데 늦게 잔 탓인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을 두들겨 맞은것처럼 여기저기 쑤시고 뻐근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열 네시간을 침대에 누워있다 막 눈을 떴을때의 느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눈도 떠지지 않고 코와 입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것처럼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뜨기 위해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눈꺼풀에 나의 의지가 닿지 않는 느낌. 어렸을 적 자주 그랬듯이 가위에 눌린 기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한 곳에 힘을 주기 위해 손가락 쪽으로 신경을 보냈다. 아무래도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면 마법처럼 풀렸던 가위처럼 손가락 하나만 1cm라도 움직이면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에 신경을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의 신경이 더욱 살아났다. 누워있는 침대의 딱딱한 촉감, 입과 코에 무엇인가가 분명히 들어와 있는 느낌, 웅성웅성 들리는 말소리까지 나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고자 최대한 오른쪽 검지 손가락에 온 집중을 다했다. 십 여번을 시도하고 났을 때 나는 온전히 몸 안의 감각이 살아났다. 그리고는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은 가위처럼 나는 내 몸 안에 정신이 갇혀버린 것이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가위가 아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몸안에 갇힌 것이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내 의사대로 작동하는 것은 생각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공중에서 떨어질때 머리부터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트럭에 치일때 신경회로가 전부다 망가져버린 탓인가? 아침에 다래끼가 난 것을 확인했을때 그냥 무시하고 출근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래끼가 날 정도로 피로를 쌓아둔 것이 잘못이었던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지 않았어야할 것들에 대한 후회가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물론 나의 눈은 젖어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내가 식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난 후로는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이가에 대한 의미없는 원망, 피할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한 후회, 코와 입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에 대한 절규가 계속되었다. 주변이 시끌시끌해지면 나 좀 살려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바보같은 짓이지만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서 소리쳤다. 그래도 21세기 현대의학이라면 내 목소리가 닿을 것이라고, 그 목소리가 들리면 의사는 '환자분께서는 내면에서 사투를 벌이고 계십니다 보호자님, 저희 병원에서도 최첨단 의료기기를 사용해 최선을 다할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환자분께서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외쳤다.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는 말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수시로 사로잡혔다 풀려나곤했다. 한번은 숫자를 세는데 집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로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만 인지할 수 있을 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나 세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숫자를 세다보니 미칠것 같은 기분을 잠시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확히 120,000까지 셌을때까지만 유효했다.


정상인이라면 가만히 앉아 한번에 셀 수 없는 숫자를 세고 나서도 내게 남는 것은 캄캄하고 답답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하든 결국 나는 어둠속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르스처럼 나는 끊임없이 어둠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절규가, 그 다음에는 인내가 의식의 전부를 차지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내 영혼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하루아침에 내 육신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에게 살아있음이란 저주와 마찬가지였다. 나의 고통을 끝내줄 테세우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주위에서 웅성거리기만 할 뿐 미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 가버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인식,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인식,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부정하고 잊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나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철저한 망각만이 무저갱과도 같은 이 어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따금씩 존재에 대한 자각이 나를 숨막힐 듯한 공포로 몰아세웠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나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어둠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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