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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Oct 30. 2022

10.

“휴, 쉽지않네.”


다시 돌아온 남자가 지쳐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나는 뜬구름 같은 남자의 말을 따라해보았다.


“예전에 영감이 말해준 적이 있어. 그때는 정말 헛소리 취급했는데 말이야.”


“뭐라고 하셨는데?”


“‘흐퓨’가 나타날 때에는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또한 나타나게 되니 조심하라고 말이야.”


남자는 목소리를 가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우리 둘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꽤 있어. 네 생각보다 훨씬 많아. 그 대부분이 너나 나처럼 정신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에 의해 자연으로 사라지지. 전에 말했듯이 육체는 육체대로 소멸하고 정신은 정신대로 에너지가 다할때까지 무한히 확장해버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영감의 말대로라면 순리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간혹가다 영감이나 나, 혹은 너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 삶의 의욕이 강하거나 혹은 육체와 연결이 미세하게 남아 있거나 살아 있을 때 어떤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어 정신체로써 각성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달성했거나 하는 이유로 말이야. 그런 존재들은 대부분 순리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 내 스승이던 영감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고.”


“순리대로 살아간다는게 무슨 말이야?”


“모든 것이 짜여진 법칙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정신체의 세계에서도 각 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거지. 너 같이 방황하는 정신체의 자리를 찾아준다거나 하는 질서를 지키는 일. 그런 일을 하다 겸허히 에너지의 소진을 받아들이는거지.”


남자는 덤덤히 말했지만 ‘에너지의 소진’이라는 말이 곧 ‘소멸’과 같다는 생각에 나는 덤덤할 수 없었다.


“그럼 에너지가 다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전에 말했듯이 나도 몰라. 영감도 모른다고 했고. 아, 마지막에 영감은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어. 하지만 나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지.”


“그래서 아까 그 굉음은 뭔데?”


나는 남자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다 필요한 이야기라 그래. 자, 이렇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개중에 그렇지 않는 존재들이 있어. 삶의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결국 소멸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쟁이든간에 말이야. 그들은 ‘포식자’라고 불려.”


“포식자?”


“다른 정신체를 흡수해서 에너지를 유지하거든. ‘흡수’보다는 ‘잡아먹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지만.”


남자는 징그럽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양팔을 감싸쥐었다.


“그럼 흡수된 사람.. 아니 정신체는 어떻게 되는건데?”


“포식자의 자양분이 되어 함께 살아가겠지? 그게 살아있는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도 포식자야?”


“그래. 포식자 중에서도 여러 정신체를 ‘흡수’한 포식자를 그렇게 부르지. 엄밀히 말하자면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후보가 맞는 말이지만 말이야.”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


“포식자도 에너지가 다하면 소멸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똑같다고. 그걸 다른 정신체를 흡수해서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게 보충하는 건데, 정신체를 다 잡아먹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없겠네.”


남자는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라는 말이 붙었다고 말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포식자도 마찬가지로 ‘흐퓨’ 능력자라는거야. 너와 같이.”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순리에 맞춰가는 방법으로는 다른 정신체를 흡수할 수 없거든. 다른 세계의 질서와 법칙을 거부하고 낱낱이 분해시켜야만 온전히 그 정수를 취할 수 있지.”


“그럼 나도 포식자가 될 수 있는거야?”


“그렇지. 하지만 포식자가 되면 두 번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어.”


“왜?”


“그렇게되면 갑자기 커진 에너지를 육체가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거든.”


남자의 말에 나는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한 육체에 여러 정신이 담긴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포식자는 왜 정신체를 흡수하는거야? 그 시간에 돌아갈 생각이나 하지.”


“글쎄.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너처럼 육체의 끈이 남아있질 않거나 아니면 그렇게 생을 연명해서라도 해야할 무언가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다 꼴보기 싫어서 부숴버리고 싶은 것일 수도.”


나는 남자의 말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타인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아서 그들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남자의 말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사정을 빌미로 다른 정신체를 흡수하면서까지 삶에 집착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숭고한 사명이나 의지로도 포장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일 뿐이다.


“어쨌든 포식자가 내 세계를 감지한 것 같애. 정확히 말하면 내 세계라기 보다는 너를 감지한 것이겠지만.”


“나를 감지 했다고?”


“원래 포식자는 ‘흐퓨 사용자’에게 끌리거든. ‘프로텍시온 사용자’를 흡수했을 때보다 여러가지로 효용이 높거든. 가령 에너지를 더 잘 흡수할 수 있게 된다던가 상대방의 세계를 좀 더 잘 부술 수 있게 된다던지 하는.”


“어째서 그런거야?”


“1+1=3이 되는 시너지 효과지. 거기다 마침 찾은 달달한 ‘거부사용자’가 꽤 큰 ‘보호사용자’의 세계 속에 있네? 이거는 포식자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아마 혼자서 내 세계를 부수기 힘들다고 느꼈으니 동족을 불러모을지도 몰라.”


“방금까지 있던 그 커다란 소리가 세계를 부수는 소리라고?”


“응. 꽤 에너지를 흡수한 포식자인 것 같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지. 문제는 다른 놈들까지 같이 올때야. 어쩌면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후보가 올수도…”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내가 들은 포식자의 특성은 탐욕스럽고 자신을 위해 남들을 먹어치우는 무자비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들이 동족을 부른다고? 거대한 사냥감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나의 의문에 남자는 포식자의 다른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건 포식자가 가진 ‘생에 대한 원념’ 때문이야. 어떤 특성보다 강력하지.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포식자의 특성상 에너지를 계속해서 갈구하게끔 정신이 설계가 되어있어. 그래서 일단 동족을 불러서 거대한 세계를 처리한 다음에 누가 그것을 차지할 것인가는 그 다음문제로 넘겨버리는거지. 일단 먹이를 확보하는게 우선이게 되는거야.”


남자는 덤덤하게 ‘먹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들에게 ‘먹이’로 표적이 된 나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표현이었다.


“그럼 우린 어쩌지?”


“우선 네가 빨리 ‘흐퓨’를 이용해서 네 세계를 만들어야지. 그 전까지는 이 세계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어. 설령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네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남자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포식자가 나타난 이상 나 뿐만 아니라 남자까지 삶의 끝을 걱정해야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네가 빨리 깨우치기만 하면 해피엔딩이니까.”


“일이 잘 안풀리게 되면?”


“뭐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같이 끝을 보는 수 밖에. 나 혼자 쌩하고 도망가지는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나만 놔두고 도망가버리면 너는 계속 여기 살아있을 수 있잖아.”


나는 남자의 말과 정 반대로 아주 걱정이 되었다. 내가 제때에 맞춰 능력을 각성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고, 내 정신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걱정되었다. 또 나 때문에 함께 소멸을 맞이할수도 있는 남자가 걱정이 되었다.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남자쪽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세계에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나로서는 언젠가 또 다른 포식자를 만나 그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 뻔했다. 물론 나도 살 수 있으면 가능한 오래 살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서 내가 생각한 수명인 90세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함께 비현실적인 능력을 수련하다보니 감성적인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 자꾸만 머릿속에 도출되었다. 남자가 합리적인 결정이 아닌 둘 다 소멸을 택하는 불합리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에 나는 정말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불합리한 선택이 아니야. 원래 내가 해야할 의무를 다 하는거지.”


남자가 내 생각을 읽고 말했다. 나는 전부터 남자가 말한 의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무슨 의무?”


“여러가지 의무지. 먼저 된 자로써 나중된 자를 도울 의무, 인연이 닿은 자를 외면하지 않을 의무, 보호자로써 ‘거부사용자’를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에게서 보호할 의무.”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호흡을 골랐다.


“사실 마지막 의무는 영감도 하지 못한 일이야. 나는 영감에게 나중된 자이자 인연이 닿는자였지 ‘거부사용자’는 아니었거든. 영감이 마지막 가르침을 알려줄 때 ‘거부사용자’를 만나면 보호자로써 의무를 다해야한다고 말했어.”


“그때 말한 ‘위로 가는 티켓’ 때문에?”


내 말에 남자는 웃으며 ‘그것도 그거지만’이라고 말하고는 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감이 말하길 ‘흐퓨사용자’는 양면의 아수라와 같은 존재라고 했어. 끔찍한 파괴자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가 될 수도 있대. ‘거부사용자’는 돌연변이가 아닌 세계의 필요로 탄생한 존재라 끔찍한 파괴자가 되지 않게 할 의무가 우리 같은 일반 보호능력자에게 있다고 말했어.”


“이 세계에 필요하다고?”


“그래.”


남자는 ‘거부사용자’가 이 세계의 질서를 이루는데에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보호능력자가 이 세계를 이루는 기초적인 단위라면 거부사용자는 뒤틀린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는 백신과 같은 역할이었다. 능력이 비대해진 보호능력자가 다른 보호능력자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는 것을 거부사용자가 적절히 그들의 세계를 수정하거나 영역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보호능력자의 수가 거부사용자에 비해 월등히 많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체로 살아가는 주민의 숫자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사실 거부사용자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보호능력자가 대부분이야. 나도 영감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남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신체 주민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낸다고 했다. 대게는 남자와 같이 돌아갈 곳이 없는 유목민 신세라 보통 세 단계의 선택을 거친다. 첫번째 단계를 남자는 ‘유아기’라고 표현했다. 이 단계에서 주민들은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한 없이 많은 것들을 만들고 부순다. 그 과정은 육체와 함께 했던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길다고 한다. 특히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 있어서 후회되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첫번째 단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두 번째 단계는 역시 남자가 이름을 붙인 ‘하염없는 기다림’이라는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 주민들은 서서히 첫번째 단계에서 느낀 희열과 쾌감을 잃어버리며 한 없는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나 결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생각은 가지지 않는다. 혹시라도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고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이 두 번째 단계였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를 남자는 ‘숭고한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이쯤되면 다들 깨닫지. 더이상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가져온 희망을 선뜻 버릴수 있겠어? 그것은 목숨을 끝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야. 아니 희망을 버리는 일에 비하면 목숨을 스스로 끝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여기서는 더 간단해. 육체적 고통도 없이 ‘나 이제 끝!’ 하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방법을 선택해.”


“마지막 방법?”


“다시 육체로 돌아갈 방법이 있는지 온 세계를 뒤지는거야. 자신의 에너지를 무한히 확장시켜서.”


“잠깐,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그대로 흩어지는 것 아니야?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며.”


내 말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직까지 그들의 시도가 성공했다고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럼 그렇게 사라지는거야?”


“대부분은 그렇지. 혹여 어떤 사람에게 얹혀 조금이나마 연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는 ‘숭고한 여정’을 떠난 사람들의 말로를 이야기하며 ‘사람에게 얹혀 사는 부류’에 대해 설명했다. 오랜기간 정신체로 살아온 이들의 에너지는 일반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의 정신 에너지 보다 훨씬 강하고 발달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육체라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무한히 확장하려는 정신을 강제로 붙잡아 두어야 했다. 게다가 정신체로써 그들의 유희는 대부분 정신력을 사용해야 이룰 수 있었다. 즉, 에너지를 무한히 확장하지 못하게 가두는 작업과 그 안에서 필요한 만큼 에너지를 뽑아쓰는 작업을 동시에 해야했던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고밀도의 정신 에너지를 한번에 풀어버리게 됨으로써 그들의 정신 에너지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영향을 끼쳤다.


“에너지도 여러가지가 있지.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긍정, 부정… 그들의 에너지가 한바탕 휩쓸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것들을 느끼고는 해. 순간적으로 우울감을 느낀다거나, 갑자기 별 것도 아닌 일에 즐거워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물론 그것도 예민한 사람들에게 한 해서지만 말야. 개중에서도 특히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 너희 나라에서는 무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말야. 그들은 정신 에너지의 영향을 굉장히 크게 받아. 그런 그들이 고밀도의 정신 에너지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애?”


“미치나?”


“비슷해. ‘숭고한 여정’을 떠난 그들의 에너지 편린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야. 삶에 대한 명확한 의지. 너무 작게 분리되어 다른 것들은 다 제거되고 원초적인 부분만 남았지만 때로는 그 원초적인 것이 가장 강력할 때도 있지. 그 에너지가 너희가 말하는 무당과 만나게 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증폭돼.”


“왜?”


“무당의 정신 에너지로 삶을 연명할 수 있게 되거든.”


“너무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아니야?”


나는 팔을 쓰다듬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사실인걸. 너희 나라의 무당 뿐만이 아니야. 전 세계의 샤먼들이 마찬가지야. 그들은 항상 자신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식을 요구하지. 음… 너희 나라말로 하면 굿 같은 것들 말이야.”


남자는 샤먼들이 어떻게 정신적 에너지를 ‘숭고한 여정자’들에게 공급하는지 설명했다.


“원초적인 생명연장에 대한 욕구가 인간들을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것을 발견한거지.   그것은 불안. 사람이 가장 크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뭔줄 알아? 바로 불안에서 벗어나는 직후야.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행위들이 다 미래에 있을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이지. 자아실현? 그런 것은 두 번째야. 다 불안을 피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을 거창하게 포장하는거지. 실제로 그렇다고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약속받은 인간으로서는 불안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지. 그러니까 샤먼에게 기생한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력을 모으는거야. 불안을 해소해주고 그에 대한 값을 받는거지. 샤먼은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샤먼은 왜 돈을 받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남자의 말에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샤먼 역시 인간인 셈이다. 그들 역시 인간인 이상 미래에 있을 불안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숭고한 여정자들의 편린은 샤먼의 정신을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시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샤먼들에게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샤먼들은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돈을 벌었다. 샤먼을 찾은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하는 대가로 얼마간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악령이나 귀신따위가 해를 끼칠지도 모르니 창가에 인형을 걸어두거나 베게 밑에 부적을 두고 일주일 뒤에 태워버리라는 샤먼의 주문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증폭된 불안감은 숭고한 여정자들의 편린이 생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로 치환되어 창가에 걸어둔 인형이나 베개 밑에 둔 부적을 통해 흘러들어갔다. 기이한 삼인의 공생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서로 좋은거 아닌가? 샤먼은 돈을 받고, 그.. 숭고한 여정자는 삶을 유지하고, 사람들은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긴 하지만 결국 불안이 해소되기는 하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남자는 단번에 내 말을 부정했다.


“샤먼은 돈을 받는 대신 계속해서 정신력을 소모해. 여정자의 편린이 샤먼의 정신력에 기생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정신력으로 여정자의 생을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근본적으로는 샤먼의 정신력을 빨아먹는거지. 게다가 여정자의 편린은 아까도 말했듯이 생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만 남은 상태야. 아무런 의식없이 그저 ‘살아만 있는 상태’지. 그렇게 왜곡된 형태가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람들의 불안을 들쑤셔서 그렇게까지 이 세상에 머물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남자의 말을 듣고보니 그랬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자각못할 정도로 그저 생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남자는 그렇게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육체와의 연결이 끊겼어도 정신체로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결국 나 역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생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서 이렇게 정신체로서 살아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기뻐해야할 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숭고한 여정자’들과 같은 길을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생의 의지만 남은 채로 남에게 기생해 인간의 정신력을 빨아먹고 사는 것이 과연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샤먼의 정신력이 고갈되면 어떻게 해?”


“편린이 샤먼의 정신력을 다 흡수하게되면 육체만 남아. 정신이 떠난 육체는 우리가 말하는 ‘죽음’을 겪겠지. 남은 것은 샤먼의 정신력을 전부 흡수한 편린인데, 그것은 수거돼.”


“수거?”


“그래.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영감도 거기까지 밖에 모른다고 했어. 자연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수거’된다고.”


남자의 말을 듣고 나는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의문.


“그럼 인간은 원래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지.”


“천국같이 식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


“그럴리가. 인간이 죽으면 가는 장소는 정해져있어. 하지만 거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했어.”


“영감님이?”

“응. 하지만 고향같은 곳이라고 했지. 때가 가까워질수록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더 든대.”


남자의 스승이 말한 ‘때’라는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향 같은 곳’이라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인간이 믿는 신은 어때?”


“어떻다니?”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것을 설계한 신도 있는거 아니야?”


나는 지하철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 같은 피켓을 들고 사람들에게 A4용지를 돌리던 노숙자를 떠올렸다. 실제로 노숙자인지는 모르겠으나 구멍이 난 신발과 회색인지 검은색인지 모를 파카를 입은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노숙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자가 내 무릎위에 올려놓은 A4용지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가 죽으면 가게될 천국과 지옥에 대해 여기저기 틀린 맞춤법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지하철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질색한 표정으로 남자의 종이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무릎에 놓인 종이가 마치 만지면 터지기라도 하는 폭탄이라도 되듯이 안절부절 못했다. 나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남자가 건넨 종이에게 화풀이 하듯이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질색한 표정을 지을거면 종이를 바닥에 버리던가 남자를 불러세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기라도 해야할텐데,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인 조치를 당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자가 무릎 위의 종이를 수거해갈때까지 불편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무릎 위의 종이가 하나둘 치워질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남자가 내 무릎에 놓인 마지막 종이를 수거할때 쯤 몇몇의 사람은 내리고 그 자리는 무릎에 종이가 얹혀지지 않은 사람들이 차지했다. 남자가 손을 뻗어 내 무릎 위의 종이를 가져가려는 순간 나는 A4 용지를 손으로 집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남자에게 친절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 아까 무릎 위 종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처럼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옆 칸으로 옮겨가 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지하철에 앉아있던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노숙자가 자신의 무릎에 함부로 올려놓은 A4용지는 일반 사람들이 느끼기에 전혀 달가운 내용이 아니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남의 무릎에 동의도 없이 종이를 올려놓는 행위는 분명히 무례한 행위였다. 얼마나 큰 죄인지는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을 받아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릴 뿐 적극적으로 남자의 무례에 항의하지 않았다.(눈쌀을 찌푸리는 것이 적극적인 항의라고 주장한다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불분명한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분노 대신 소극적인 방어태세가 유리하다고 합리화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종이를 사람들 무릎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 크기의 칼을 들이밀었다면 과연 사람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종이를 건네는 나를 보고는 괴물을 보듯하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재밌는 일이다. 그 남자는 자신을 보고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을 정상으로 생각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나를 비정상으로 본 것일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돌았지만 나는 조금도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과 생각이 맞물리며 머릿속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정신체로서 각성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 남자가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맞아.”


남자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정신체로 각성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이 많아져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거야. 더 각성하게 되면 한 번에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여러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지. 그리고 네 말대로 신도 존재하는 것이 맞아.”


“신이 존재한다고?”


“그래. 하지만 어떤 종교의 신인지는 나도 정확히 몰라. 영감도 모른다고 했어.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그렇대. 가보기전에는 알 수 있는 것 하나 없는 무지한 생명체라고 하더라고.”


남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자, 포식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너를 집어삼키기 전에 어서 우리 각 자 할 일을 하자고.”


남자가 이쯤하면 되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알면 알수록 이 세게는 낯설었다. 조금 적응할만 하면 새로운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나왔다. 포식자, 거부자,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 따위의 명칭을 육체를 가지고 있었을 시절에 들었다면 눈쌀을 찌푸렸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단어들을 이야기 했다면 ‘도를 믿지 않으니 제발 가주세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처해있는 현실이 그랬고, 내가 바로 거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가지 알 수 없는 위안이 드는 것은 언제고 보았던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A4를 돌리던 노숙자가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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