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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Oct 30. 2022

11.

“쾅!”


벌써 여섯번째 들리는 굉음이었다. 이번에는 남자도 꽤 애를 먹는지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 포식자가 남자의 세계를 거의 찾을 뻔한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정신체로서 약간의 능력을 각성하면서 나는 수면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약간의 피로는 있었지만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잠도 자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밤낮 개념이 없어진 후로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점점 잦아지는 포식자들의 벽을 부수는 소리와 남자의 굳은 표정을 미루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쾅!”


다시 한 번 굉음이 들렸다. 포식자가 확실하게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남자를 믿고 내가 할 일을 하는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훈련 초기에는 곧바로 성과가 있었다. 욕조를 탈출하는데 남자의 말에 의하면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흐퓨’ 능력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졌지만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남자 역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신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자 남자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제일 어려운 단계는 끝났어. 이제부터는 얼마나 집중하는지에 달렸어. 지금까지 감각을 깨우는 훈련이었다면 이제는 반복 숙달을 할 차례라는거지’


하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이 틀렸음을 인정해야했다. 남자가 알려주는 노하우들이 내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방법이 틀린 것 같아.”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을 잘못했어 생각을…”


남자가 심각하게 혼잣말을 하자 불안해진 나는 남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있지.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할 수 있다면 남자의 생각을 읽고 싶었지만 남자와의 정신력차이가 커서 나는 그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건 내가 조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제대로 말도 안해주고 망할 영감탱이!”


남자의 말은 혼잣말에서 한탄, 마지막에는 분노로 끝맺음 했다.


“도대체 문제가 뭔데?”


답답해진 내가 남자에게 재촉하듯 물었다.


“네가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거야.”


“뭘?”


“너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법. 나로서는 알려줄 방법이 없어.”


“대체 왜?”


“너랑 나랑은, 아니 ‘보호’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정신체들은 ‘거부’를 사용하는 정신체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전혀 다른 프로세스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축구경기를 하는 거고 너는 농구를 하는 거라고. 같은 공놀이지만 룰이 달라. 내가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너에게 농구를 가르칠 순 없잖아.”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의 스승은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자’와 ‘거부사용자’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었지만 ‘어떻게 거부사용자를 도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가 방법을 묻자 그저 ‘흘러가는대로 두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남자는 스승의 뜬구름 잡는 화법에 익숙해진터라 그 당시에는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이제야 깨달은 남자는 계속해서 ‘망할 영감탱이!’라며 화를 부렸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유는 무슨.”


나는 남자의 스승을 두둔하며 말했지만 남자와 마찬가지로 답답함을 느꼈다. 남자의 스승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기 꺼려졌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던 것일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제는 나 스스로 길을 찾아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는 남자의 스승과 남자가 걸어온 발자국을 쫓아왔다. 그대로 쫓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는데 갈림길이 나와버린 것이다. 남자와 스승의 발자국은 오른쪽 길을 따라 쭉 이어졌다. 저 멀리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나는 황량한 모래 바람이 부는 왼쪽길로 가야만 한다. 아무도 걷지 않은 듯 단 하나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사막 같은 길.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방향도 목적지도 내가 정해야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남자는 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간을 만든 신이 있다면 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어찌되었든, 우리말 속담에 있듯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죽기 밖에 더하겠어?’라는 외할머니의 입버릇이 지금 생각이 나는 것이 참 얄궂었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면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마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자에게 ‘해보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나의 결연한 눈빛을 보고는 놀란 눈치였다. 남자는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말했다. 나는 남자에게 서늘하고 어두운 방과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


“응, 출입문이 있고 사방이 다 칸막이로 막혀있어야해. 책상 위에는 서랍이 있고 서랍 밑에는 책상을 비추는 조명이 필요해.”


나의 설명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렇게 생긴 것 맞나?”


나는 남자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책상에서 여기저기 손봐야할 부분을 말했다. 남자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렇게 생긴게 맞지?”


“그래 맞아.”


“도대체 이렇게 생긴 책상은 왜 만들어달라고 한거야?”


“이게 집중이 잘되거든.”


나는 남자가 만들어낸 책상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확히 고3때 내가 독서실에서 쓰던 책상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이게 집중이 잘된다고?”


남자는 내가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책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책상을 모르는 것보니 너는 확실히 한국 사람은 아닌가보네.”


“한국에서는 다 저런 책상을 쓴단 말이야?”


나의 농담섞인 말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남자는 매번 자신의 신상과 관련된 부분의 질문을 피했다. 다른말을 하거나 딴짓을 했다. 그러다 내가 집요하게 캐물을 때면 ‘아직은 아니야 나중에’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처음에는 남자의 그런 태도가 꽉 막힌 듯 답답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나도 점차 정신체에 적응하는데 집중하느라 남자에 대해 캐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언제고 여기서 나가게 되는 날에는 남자가 먼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자, 이제 그걸 방에다 넣어줘.”


나는 다시 한 번 남자에게 부탁했다. 정확히 이 책상이 들어가고 그 외에는 거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작은 방에 조명은 ‘캄캄’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간의 소음이 있는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도 놔달라고 말했다. 내 말에 남자가 몇 번 손가락을 튕기자 그럴듯한 1인용 독서실이 완성되었다.


“자, 한 번 들어가봐.”


“너도 들어올래?”


“아니. 난 됐어. 폐쇄공포증이 도질 것 같거든.”


남자는 질색하며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런 남자를 보며 킥킥 웃어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책상 문을 열자 고3때 매일 본 풍경이 재연되는 듯 했다.


“맞다, 의자도 부탁해! 최대한 편한 걸로!”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어느새 의자가 놓였다. 최대한 편한걸로 부탁한다고 했더니 남자는 어디서 회장님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쿠션이 지나치게 빵빵하고 거대했다. 엉덩이를 슬쩍 걸쳐놓으니 구름 위에 앉는 기분이 이와 같을까 싶을 정도로 포근했다. 등받이를 기울이니 거의 눕듯한 자세가 완성되었다.


“너무 좋은데.”


“바꿔줘?”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는 푹신한 소파에서 딱딱한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터앉게 되었다. 나는 까끌까끌한 나무의 촉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의자는 어떻게 알고 만든거야?”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전, 초등학교 때 쓰던 나무의자였다. 군데군데 녹이 슬어 칠이벗겨진 다리와 귀퉁이가 살짝 부서진 등받이가 너무도 명확하게 그 시절을 대변하고 있었다.


“뭐, 네 머릿속에서 찾았지.”


남자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멋대로 그러지 말라고 좀.”


나는 남자를 흘겨보며 다시 아까의 의자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남이 나의 기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설령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라도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쓱- 훑어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채 가던 길을 가는 것만큼이나 불쾌한 일이었다. 여러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이렇게 종종 내 기억을 읽었다. 화를 내는 내게 남자는 진정하라며 명백한 훈련의 용도라고 설명했다.


“정신체에게 있어 남의 정신체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너의 정신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항상 신경을 열어놓아야해. 상대가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있게. 그런 다음에 들어온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붙잡아 감옥에 가두던지 영외로 추방하던지 하라고. 훈련이야 훈련.”


나름 그럴듯한 남자의 말에 나의 화는 한풀꺾였지만 그래도 남자에게 한가지 약속은 분명히 받아냈다. 중요한 기억은 건드리지 말 것. 설령 보더라도 아는 척하지 말 것. 남자는 흔쾌히 알았다고 수용했고, 종종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내 기억에 침투해서는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이 의자처럼.


“자, 그 다음에는 뭘 하면 되지?”


“이제 그만 너의 일을 보러 가도록 해. 나는 이 안에서 ‘훈련’ 할테니까.”


나는 간단한 축객령으로 남자를 돌려보내고는 남자가 만들어낸 ‘독서실’로 들어갔다.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놓인 그보다 더 작은 책상 칸에 들어가자 아늑함이 느껴졌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하던지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아늑함.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엎드려서 한숨 푹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 같던 이 비좁은 책상 안에서 일어난 일들은 결국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돼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점이 모여서 선이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듯이 독서실 안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마지막 날에 결과물로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 심판의 날에 그동안 내가 남의 눈을 피해서 한 모든 것들이 모두 다 까발려 지는 것이다.


나는 한껏 넘어간 회장님 의자의 허리를 몸쪽으로 바싹 당겼다. 푹신한 긴장감이 부드럽게 몸을 감쌌다. 이제부터는 집중하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 남자도, 남자의 스승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 앞은 그들도 가보지 못한 미개척지, 내가 콜럼버스가 되어 그들에게 대륙을 전파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가진 ‘거부’의 정신력을 느꼈다. 규칙적으로 진동하며 울리는 소음이 마음을 한결 고요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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