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 빨간 페라리를 탄 남자

05

by starka

-자네 생각보다 소심하군 그래 그저 순댓국이라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김은 소름이 돋았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죠?”


-응? 요즘 시대에 전화번호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잔말 말고 나오게 벌써 시켰으니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노신사가 어이가 없었지만 김은 어느새 일어나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대단한 비밀은 아니지. 그런데 순댓국집으로 오라는 건가? 어떻게 알고?



김이 서둘러 도착한 순댓국집에는 이미 노신사와 순댓국 두 그릇이 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가게 안에는 노신사뿐이었다.


“어떻게 알았죠?”


김은 신발을 벗으며 앉기도 전에 노신사에게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가 무슨 비밀이라고.”


노신사가 허허 웃으며 말 끝을 흐렸다.


“장난하시지 마시고요!”


김이 소리치자 노신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우선 먹고 이야기하지 그리 급할 것 없으니.”


노신사의 말에 김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 어’ 하면서 순댓국을 퍼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릇을 다 비운 김은 참았던 숨을 '하' 하고 터뜨렸다. 고개와 팔을 뒤로 젖히고 노신사 쪽을 쳐다보니 김이 나는 순댓국이 그대로였다.


"왜 하나도 안 드셨어요?"


김이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노신사에게 물었다.


"난 괜찮네. 밥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니."


노신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궁금한 게 많겠지? 그 물은 뭔지, 내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는지, 도대체 나는 누군지."


노신사의 말에 김은 '네!' 하고 빠르게 대답했다. 진작부터 궁금했던 부분을 이제야 듣게 될 생각에 작은 흥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물은-"


노신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은 무엇인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노신사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침을 꼴깍 삼켰다.


"자네 욕망의 정도를 말하지. 오늘 아침에 받은 물병에는 '0'이라고 적혀 있었지? 그건 자네 욕망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거지. 하찮다는 거야."


노신사는 '받은 물병'이라고 말했다. 그럼 그 물병은 노신사가 갖다 놓은 것인가? 김이 생각하고 있을 때 노신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숫자가 클수록 자네의 욕망이 크다는 거지. 다만 욕망의 크기에 따라 자네의 노력의 정도가 달라져.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나?"


노신사는 김에게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욕망하는 행위'를 지속해야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의 크기에 따라 물병에 숫자가 매겨지고 강하게 욕망할수록 물병의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자네 욕망에 대한 결과는 물병에 숫자가 사라진 날 오후 4시에 알 수 있네."


"4시요?"


"그래. 낮과 밤의 경계가 시작되는 오후 4시. 그때에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거지."


노신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다가 김의 표정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일세. 그저 우리도 체계가 있어서 말이지. 업무를 처리하려면 시간을 줘야 할 것 아닌가?"


재밌다는 듯이 계속해서 웃는 노신사와는 반대로 김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이상한 것을 떠나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것이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제게 믿으라는 건가요? 대가는요? 악마처럼 영혼이라도 가져가시나요?"


김이 목에 핏대마저 세우며 따졌지만 노신사는 가만히 웃을 뿐이다.


"자네, 주변에 친구가 갑자기 사업이 잘돼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보세. 그럼 그 말을 왜 믿지?"


김이 대답이 없자 노신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의 옷이나 집, 차 따위를 보고 판단하지. 그렇지 않은가?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추론에 합당한 근거가 보여야 믿지 않느냐는 말일세. 나는 자네더러 믿으라고 강요한 적 없네. 단지 몇 가지 자네가 믿지 못할 일들을 경험시켜줬을 뿐이야. 믿고 안 믿고는 자네 자율세. 악마?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만 그건 패배자들이나 하는 말이지. 쉬지 않고 욕망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일 것 같은가? 자네는 그나마 싹수가 보여서 내가 제안을 한 걸세. 아까도 말했듯이 선택은 자네 자유야.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지."


노신사가 손을 들자 저번에 봤던 기사가 중절모와 갈색 코트를 손에 두르고 가게로 들어왔다. 노신사는 중절모를 받아쓰며 김에게 말했다.


"자네는 젊어. 재능도 있고. 잘 생각해보게 기간은 사흘, 하루 지났으니 이틀이군. 그 안에 물병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원래 살던 대로 살면 되네."


노신사는 '원래'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노신사가 나간 뒤 가게에는 한동안 김 만이 있었다.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연달아 울리며 손님이 온 것을 알리자 김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가게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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