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 빨간 페라리를 탄 남자

by starka

책상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던 김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역시'


김의 예상이 맞았다. 냉장고에는 어김없이 물병이 들어있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물병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지만 김은 반가운 마음으로 물병을 집어 들었다.


'1224'


김은 물병에 새겨진 숫자를 보고 경악했다. 막연하게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 높은 숫자였다. 잠시 뒤 김은 뚜껑을 따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김은 맨 처음 페라리를 얻을 때를 생각했다. 그때도 '458'이라는 줄어들지 않는 숫자 앞에서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페라리를 검색하고, 페라리에 대해 생각하고, 페라리에 타는 상상을 하며 잘 때도 페라리 꿈을 꿔도 겨우 채울 수 있는 숫자는 고작 50 남짓이었다. 노신사의 말대로 1초도 쉬지 않고 욕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더 골치 아팠던 것은 잠시라도 페라리에 대한 생각을 쉬면 물병의 숫자가 되돌아 간다는 점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김은 결국 페라리를 얻었다. 물병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사흘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숫자가 사라지자 마법처럼 모든 일이 일어났다.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원장이 밀린 보너스라며 10년 치의 성과급을 주었고, 고급 중고차 딜러에게 엄청난 조건의 리스 승계라며 연락이 왔다. 얼떨결에 김은 양재동으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했고 검은색 종마가 그려진 빨간 키를 받았다.


페라리를 받은 이후 김의 삶은 눈부시게 변했다. 강변북로를 따라 페라리의 우렁찬 엔진 소리를 들으며 달리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세포 하나하나가 활기차게 각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드라이브가 끝나면 몸은 에너지가 넘치고 모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샘솟았다. 그러다 난관에 봉착하거나 원하는 것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강하게 원했다. 냉장고에는 새로운 숫자가 새겨진 물병이 생겨났고, 김은 더 강하게 원했다. 그렇게 김은 원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얻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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