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본 것은 김이 이 병원에 두 번째로 출근하던 날이었다. 김이 졸린 눈을 애써 뜨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후다닥 뛰어 들어와 3층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보며 김은 그녀가 참 밝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내리기 전까지 김은 곁눈질로 거울을 보며 그녀와 자신의 차이를 비교했다. 축 처진 어깨에 이리저리 꼬부라진 곱슬머리와 칙칙한 검정 터틀넥에 답답한 뿔테 안경. 그에 비해 그녀는 포니테일로 묶은 생기 넘치는 긴 머리와 발갛게 상기된 볼, 구레나룻을 따라 흐르는 작은 땀방울마저 싱그러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김은 한참 동안 이미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좇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도.
김은 그녀의 이름을 그의 환영회 때 알게 되었다. 데스크에서 늘 지루한 얼굴로 환자를 받는 권 간호사를 통해서다. 권 간호사는 업무의 시작부터 끝나기 5분 전까지 항상 짜증이 나 있는 표정으로 유명했다. 다만 심성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아서 그녀에게 익숙해진 환자들은 오히려 그녀의 표정을 가지고 놀리곤 했다. 원장과 김, 권 간호사와 다른 직원들 셋까지 여섯 명이 모인 환영회는 조촐했지만 그렇다고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쉴 새 없이 자기 말만 하는 원장과 권 간호사 때문이었다. 대화의 주된 주제는 남의 사생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원장은 옆 동네 다른 치과 원장이 이번에 새로 산 외제차에 대해 '차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차를 산다고 난리'라며 열변을 토했고, 권 간호사는 이번에 결혼하는 자기 친구의 혼수에 대해 떠들어 댔다.
"원장님, 그 세라씨 남자 친구 봤어요?"
"응? 세라씨가 누구야."
"그 왜 약국집 딸이요! 원장님도 참 아직도 이름도 모르세요?"
"아아, 난 또 누구라고. 아니, 요즘 그 집 딸내미 안 본 지 꽤 됐는데?"
"그 집 딸내미 이번에 약혼한다는데요?"
"그래? 아니 요즘 시대에 무슨 약혼까지 하고 그래 참. 그냥 식이나 올릴 것이지."
"제가 저번에 퇴근할 때 봤는데, 남자 친구가 있는 집 자식인가 봐요. 차도 페라리던데요?"
"그래? 허 참, 남자 잘 만났구먼. 난 언제 그런 차 몰아보나."
지루한 표정을 숨기며 자리에 앉아 있던 김은 '약국집 딸내미'에 대해 궁금해졌다. 왠지 모르게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국집 딸이요?"
"네. 어머, 김 선생님 한 번도 못 보셨어요? 그 집 딸 엄청 미인이라 유명한데."
권 간호사는 '미인'을 은근히 강조하며 말했다.
"아, 네..."
김이 멋쩍게 대답하며 혹시나 싶어 권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긴 머리를 묶고 다니는.."
김이 말하자 권 간호사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김에게 말했다.
"에이 뭐야, 김 선생님 봤구만 뭘. 아님 긴 머리 여자를 좋아하시나 봐?"
"아뇨, 그게.. 그냥 궁금해서.."
김이 얼버무리자 권 간호사는 손을 내저으며 다 안다는 듯이'괜찮다'라고 말했다.
"맨날 긴 머리를 한올도 빠지지 않게 꽉 묶어서 말총처럼 하고 다녀요. 머릿결도 좋던데. 나 같으면 그 이쁜 머리 C컬이나 웨이브 해서 풀어헤치고 다니겠다. 어휴 참. 그리고 무슨 맨날 옷을 청바지에 운동화만 입는지 몸매도 좋더만 학생처럼 쯧쯧. 그러고 다니는데 어떻게 그런 남자가 꼬였나 몰라?"
권 간호사의 말을 들은 김은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녀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포니테일의 그녀도 분명 청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