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근데 약혼자가 어떤 사람인데요?"
김은 순수한 호기심을 가장한 말투로 권 간호사에게 물었다. 권 간호사는 처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가 나타났다는 것에 만족해 별다른 의심 없이 '세라 씨'의 약혼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응? 세라 씨 약혼자? 아휴 말도 마요. 키도 크지, 얼굴 잘 생겼지, 저번에 퇴근할 때인가? 여기 앞으로 데리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자세히 볼 기회가 있어서 봤더니 몸도 좋은 것 같애. 어깨도 딱 벌어져가지고. 거기다 차도 페라리잖아요 페라리. 김 선생님 차 좋아해요? 남자들의 로망이잖아요 빨간색 페라리. 아니 솔직히 차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그러는데, 여자들도 좋아해요. 남자 친구랑 페라리를 타고 길거리를 다니면, 아.. 정말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니까요?"
이후로도 권 간호사는 쉴 새 없이 약혼자에 대해 설명했지만 김은 조용히 한 귀로 흘렸다. 시끌벅적한 회식자리에서 김의 귀를 관통한 '페라리'. 그 세 글자를 듣자, '약국집 딸 세라 씨'에 대한 마음을 고이 접기로 했다. 세상에 페라리라니.
김은 모형 장난감도 어렸을 때 비싸서 갖지 못했던 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남자와 경쟁을 한다는 상상을 하자 끔찍했다. 애초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 끼어들 생각조차 없었지만 페라리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떤 것이 되어 김을 조용히 내리눌렀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김은 페라리를 모는 이름 모를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이 넓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부와아앙- 하는 배기음을 뿌리며 사람들의 그저 그런 차를 추월하는 기분은 어떨까. 자동차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품에 가까운 아름다운 그것을 보며 추월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취기가 오른 김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처음에는 작게, 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엔 점점 더 크게 웅, 웅 하더니 양팔을 직각으로 구부려 허공에 달려있는 운전대를 잡았다. 배기음이 좀 더 잘 들리게 버튼을 눌러 양쪽 창문을 끝까지 내렸다. 부와아앙- 공기를 찢는 머플러 소리가 온몸의 세포를 자극했다. 길 옆 가로등이 은은히 비추는 한강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 둘, 셋. 그런데 가로등이 왜 이렇게 느리게 지나가지?라는 생각을 할 때, 김은 어이없게 쳐다보는 택시기사의 눈과 백미러를 통해 마주치고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에 얼굴을 묻고 있어야만 했다. 창문의 한기가 김의 얼굴을 발갛게 만들었지만 김은 술 냄새 가득한 입김을 불어 주변을 데우면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