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사와 만나 순댓국을 먹은 후 김은 곧바로 페라리를 갈망했다. '모 아니면 도'식의 생존 방식은 하루 살이 가정에서 살아온 김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었지만 김은 노신사의 말에 시간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김에게는 시간과 정신력이 소비될 뿐 경제적으로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기에 김은 노신사와의 만남이 인생에서 몇 번 온다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녀가 잊히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이 세라인 것도, 그녀의 남자 친구이자 약혼자의 차가 페라리란 사실도, 김의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를 않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무엇인가를 욕망했던 적이 있는가 자문할 정도로 김은 페라리를 원했다. 아니, 사실 페라리를 탄 세라의 남자 친구의 자리를 탐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김은 원장에게 온갖 핑계를 대며 3일 치 휴가를 내고 집안에서 내내 물통을 붙잡고 페라리만 생각했다. 한 가지 생각만 한다는 것이 지루하고 집중도 되지 않았지만 강렬한 욕망을 떠올릴 때마다 줄어드는 물통의 숫자가 김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옭아맸다. 그렇게 물병의 숫자가 0으로 변하는 것과 김이 페라리를 좋은 가격으로 리스승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거의 시간차가 없었다.
김은 페라리의 오너가 되고 처음으로 시동을 켠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키가 아닌 끝이 빨간 철제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었을 때 울려 퍼지는 거대한 배기음은 가난과 노동이라는 그 간의 일생을 부정하게 했다. 3-4시간의 수면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장 몰래 의학용어를 외우던 기억부터 부려먹기 좋아하는 원장 밑에서 주 6일 72시간 노동 후 받는 터무니없이 작은 월급의 기억까지, 김은 페라리의 배기음을 듣고 쏠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그것 모두를 맞바꾸기로 결심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더 이상의 가난은 없다.'